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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r 23. 2024

라면인 건가 ♬

출처 : 악동뮤지션 라면인 건가, 20대 속마음 읽은 10대의 자작곡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interview365.com)



  물 550ml를 끓인다. 물이 끓으면, 면과 수프를 넣고 4분을 더 끓인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모든 조리 끝.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 맛있게 익은 면발을 흡입할 생각에 부푼 마음도 잠시, 갑자기 아가가 운다. 그럼 그렇지. 잠시 후 식탁으로 돌아와 퉁퉁 불은 면발을 입안 가득 욱여넣어본다. 언제쯤 마음 편히 "뽀글뽀글 뽀글뽀글 맛 좋은 라면"을 먹을 수 있을지!



  아가의 이유식을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아가가 이유식을 시작하고부터, '밥'을 먹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수고스러움을 동반하는 일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먹을 식사야 그저 미리 얼려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후 반찬 몇 개 꺼내서 대충 먹으면 그만이지만, 사랑하는 아가의 밥을 어찌 그리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우리 집에는 가장이자, 기장(Captain)이며, 요리사를 겸직하고 이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아내이자 엄마! 엄마는 주말이면 찜기에 온갖 채소를 썰어 넣고 아기가 먹을 음식을 큐브로 만들어 놓는다. 채소뿐만이 아니다. 고기의 핏물을 빼고, 쌀을 불리고, 때에 맞춰서 끓이고 식히며 정성을 다해 아가의 '진지'를 준비를 한다. 아빠는 그저 얼린 큐브를 꺼내 녹인 후 아가의 입에 떠 넣기만 할 뿐.  



  사실, 아빠 밥이든 아가 밥이든, 만들어진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녹인 후 식탁에 놓고 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가랑 같이 식탁에 앉아, '나 한 입, 너 한 입' 하면서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가가 밥을 잘 먹으면 잘 먹는 대로, 잘 먹지 않으면 안 먹는 대로 사건·사고가 벌어진다. 



  아가가 컨디션이 좋은 날은, 온몸을 들썩이며 와구와구 밥을 잘 받아먹는다. 밥을 입으로만 먹으면 좋을 텐데, 온몸으로 먹다 보니 밥알이 사방으로 튄다. 밥 먹는 게 이리 신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가가 싱글벙글 웃으니 아빠는 그저 흐뭇하게 아가를 바라볼 뿐이다.



  아가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무척 난감하다. '지금 먹지 않으면 분명 조금 후에 배가 고파서 징얼거릴 텐데' 하는 생각으로 걱정이 앞선다. 아빠의 온갖 재롱이 난무하는 시간. 어떻게든 한 술이라도 떠먹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에는 아가가 휘두르는 팔에 밥알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닌다. 



  이리하나 저리하나 수습은 언제나 아빠의 몫. 뒷수습에 정신이 없는 아빠는 본인의 식사를 챙기고자 하는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아가와 오손도손 함께 밥을 먹는 환상을 내려놓았다. 



  아빠에게는 그저 조용한 때를 기다려 먹는 '라면'이 그 어떤 메뉴보다 진수성찬일 뿐. 물론, 라면도 때를 잘 가려야 한다. 때를 잘못 만나면 퉁퉁 불은 라면을 맛볼 수밖에 없다. 바로 오늘처럼...



  아빠의 끼니는 언제나 위태위태하지만, 아빠가 주는 밥을 오물오물거리며 먹는 아가를 볼 때면 아빠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번진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은 부모가 되어봐야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아!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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