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가 태어난 지 만 8개월을 앞둔 지금, 육아에 대한 소소한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때마다 아가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은 고되다. 하지만 아가가 입을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을 보면, 침대 위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며 알 수 없는 외계어를 남발하는 소리를 들으면, 욕조 안에 쏙 들어가 작디작은 손으로 물을 첨벙첨벙 거리며 환하게 웃을 때면, 아빠는 '아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무장해제!
엄마가 아가를 낳고 90일의 출산휴가를 마치자마자 출근을 하게 되면서, 초보 아빠는 걱정이 많았다. '엄마가 없는 약 10시간 동안, 나는 과연 이 작은 외계생명체를 데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엄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도 키워보았고 갓난아기였던 조카를 돌보았던 경험도 있었지만, 아빠는 정말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쌩초보'였다. 그런 아빠를 믿고 출근하다니... 새삼스레 엄마의 대단함을 떠올려본다.
사실, 엄마도 아빠 못지않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너무 일찍부터 아가가 엄마랑 떨어지게 되면 아기의 발달이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부모나, 시터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종일 돌볼 수 있는 상황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그래도 아빠의 손길이 엄마의 것과 같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엄마가 더 잘 알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가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점차 쌓일수록, 엄마를 낯설어하게 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었다.
다행히 엄마, 아빠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아가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잘 커갔다. 이따금씩 눈곱이 잔뜩 끼어서, 먹기 바쁘게 토해서, 날카로운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서, 책 모서리에 찧여 멍이 들어서, 장염에 걸려서, 기저귀 발진 등등의 특이사항으로 엄마·아빠를 애태웠지만, 아가는 짧고 굵고 치열하게 울고 난 뒤 금세 아픔의 시간을 털어버리며 엄마·아빠를 안심시켰다.
얼마 전부터 어디서 배운 개인기인지 눈을 찡긋하며 웃는다.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눈을 찡긋하며 웃는 사진이 많던데,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가가 눈을 찡긋할 때마다 엄마·아빠가 박장대소를 했다. 아가는 엄마·아빠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눈을 찡긋 대며 웃는다. 요 귀여운 것...!
엄마는 매일 아침 웃는 아가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잘하고 있다. 엄마의 가장 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아가는 엄마를 보면 빵긋빵긋 너무나 잘 웃고,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와 재미난 장난에 까르르 소리를 내며 좋아한다. 이제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혹은 불편한 게 있어도 그냥 울거나 징징 내지 않고 "음마 음마"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아빠는... 언제 즘 부르는 거니...?)
엄마는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아가가 엄마도 아빠도 불편해하지 않고 잘 웃으며 건강하게 지낸다고 말이다. 아빠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투박하고 거친 아빠의 손길이 불편할 법도 한데, 아가가 잘 참고 견디며 엄마를 기다려주니 말이다.
엄마는 요새 '아빠한테 올래' 놀이의 재미에 푹 빠지 것 같다. '아빠한테 올래' 놀이는 엄마가 아가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아빠가 아가에게 손짓하는 행동을 하는 놀이이다. 이 놀이의 하이라이트는 아가의 반응을 보는 데에 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가는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옆에 아빠가 나타나면 전보다 더 즐거워하며 웃는다. 여기서 핵심은 아빠'도' 보이면이다. '아빠한테 올래' 놀이를 하기 위해 아빠가 엄마 옆에서 오라고 손을 뻗어 부르면, 아가는 까르르 웃으며 반대편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그리고는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신나서 웃는다. 아빠는 다시 아가가 고개를 돌린 반대편에 가서 똑같이 손을 뻗어 불러보지만, 아가는 다시 엄마의 반대편 어깨로 고개를 홱 돌리며 웃는다.
그런데...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아가에게 엄마가 손을 뻗어 부르면? 두 팔 벌려 엄마에게로 쌩하고 가버린다. 그리고는 아주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아가의 그 표정을 볼 때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이 지금 이 순간에 가득함을 느낀다.
엄마는 엄마다. 아무리 아빠가 하루 종일 부족함 없이 아가를 먹이고 재우고 입힌다 해도, 엄마만 줄 수 있는 포근함과 따뜻함이 있는 것 같다. 아빠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엄마'라는 존재의 무거움이라고나 할까?
엄마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까르르 웃는 아가, 이를 보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엄마,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아빠,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