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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r 19. 2024

아가야! 그쪽이 아니라 이쪽인데... (38)




  매일 저녁 '육퇴!'를 외친 후 이어지는 습관적인 행동이 하나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찍은 아가의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이다.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하는 곳이 어디냐 하면 바로, 부모님과 함께 있는 SNS 단체 대화방이다. 



  아가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진 촬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셀카는 물론이고, 근사한 경관을 보아도 늘 휴대폰을 꺼내드는 것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을 누구보다 신봉했지만, 오래전부터 습관이 되지 못한 사진 찍기는 아가가 태어나서도 한동안 이어졌다. 



  첫 손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아가를 만날 수가 없으셨다. 아가가 태어났을 무렵에도 아직 코로나19가 완벽하게 잠잠해지기 전이였고, 그로 인해 병원은 물론 조리원에서도 보호자를 제외한 외부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조리원을 퇴소하여 집에 온 뒤에도 얼마간은 아가의 약한 면역력을 우려하여 부모님을 집으로 모실 수 없었다. 손주의 사진 속 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셨을 텐데 사진 찍는 것에 관심도, 소질도 없는 아들 때문에 어여쁜 아가를 보지 못하는 부모님의 심정이 오죽하셨을까. 아들 내외 신경 쓸까 봐 말도 못 하시고.



  널따란 거실에서 홀로 꼬물거리고 있는 작은 생명체가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따금씩 아가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사진 촬영과 사진 전송은 별개의 일이었다. 아주 어쩌다 한 번씩 아가의 사진을 부모님과 함께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올릴 때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장문의 답장을 남기시며 아가를 보는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때라도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아가가 태어난 지 5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부모님께서는 처음으로 아가를 안아보셨다.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자식을 부모에게 안겨드리는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아가를 안고 계실 때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여러 장의 사진 중에 아버지께서 아가를 품에 안고 개구쟁이처럼 웃고 계시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보며 '내가 막 아빠가 된 것처럼, 아버지도 이제 막 할아버지가 되셨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 단체 대화방에는 아가의 사진이 차곡차곡 쌓여가기 시작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아가의 먹고, 자고, 뒹구는 모습을 찍고 또 찍었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몇 장의 사진을 골라 대화방에 올렸다. 한 번쯤은 짤막하게 답장을 주실 법도 한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늘 긴 내용의 답장으로 아가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사랑스러움 등등의 여러 감정을 전해주셨다.  



  가끔씩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사진을 올리게 되면, 늦게 주무시는 어머니께서만 메시지를 확인하셨고, '아버지는 아가 사진 기다리다 조금 전에 잠드셨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자식들이 장성하여 자녀를 낳으면 어떤 기분일까?' 이 또한 때가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지난 주말, 아버지 생신을 기념하기 위해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연히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계획하려고 했으나, 부모님께서는 아가가 오고 가는 길이 불편할 것이라며 한사코 모임 장소를 우리 집으로 정할 것을 고집하셨다. 



  약속 당일, 부모님께서는 말씀드린 시간보다 1시간여를 빨리 오셨는데, 집에 들어오시는 어머니께서는 "네 아버지가 길 막히면 아가 보는 시간이 늦어진다고 어찌나 재촉하던지!"라고 말씀하시며 곁에 계신 아버지를 째려보셨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째림?을 뒤로 한 채, 아빠와 함께 현관까지 마중 나온 아가를 보며 해맑게 웃으셨다. 



  삼대(三代)가 함께한 반나절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아가는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덕분에 아빠는 팔다리가 성한 상태로 낮 시간의 여유를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사진은 열심히 찍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성한 의식을 위해.



  그런데 하루 종일 뭔가 계속 찜찜한 기분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분명 할아버지인데, 아가가 할머니에게만 안기려고 계속 손을 뻗어댔으니 말이다. 아가야... 그쪽이 아니라 이쪽... 할아버지도 좀...


  Anyway... 할아버지 ~ 생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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