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호.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집은 복도식 아파트의 13층 11호였다. 방은 두 개. 안방은 부모님의 방이었고, 작은방은 나와 형의 방이었다. 형과 함께 쓰는 공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형과 함께 놀았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방에 침대가 있었고, 그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며 즐거워했던 것뿐.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전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집을 구했다. 방은 세 개. 안방은 당연히 부모님의 몫이고, 남은 두 방 중 하나를 형과 내가 함께 사용하였다. 방 하나가 비어 있었지만, 그 집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형과 계속 한 방에서 지냈다.
머리가 점점 커가면서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때마침 우리 집은 다시 이사를 해야 했고, 이참에 내 방을 만들어 달라며 부모님께 강력히 요구하였다. 부모님께서는 나의 간절함을 아셨는지, 이사한 집의 방 세 개중 하나를 나에게 할당해 주셨다. 그때부터 세 개의 방 중 하나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우리 집'이 생겼다. 신혼집도 방이 세 개였다. 하나는 침실, 하나는 드레스룸, 남은 하나는?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내 방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방 세 개 중 하나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책상과 의자를 들여놓았고 방 한편에 낮은 책장도 세워두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작지만 아늑한 나만의 공간에서 책도 읽고 글도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 공간에 들어서면, 일상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은? 여전히 방 세 개인 집에 산다. 하지만 내 몫의 공간은 여전하지 않다. 터전을 잃은 책상과 책장은 새 주인을 찾아 떠났다. 책상과 책장을 잃은 주인은? 집안 곳곳을 배회하며 지내고 있다. 작고 소중한 우리 '아가'를 품에 안고서.
올챙이같이 꼬물거리기만 하던 아가는 어느새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똥강아지가 되었다. 올챙이가 똥강아지로 성장하는 속도에 비례하여 필요한 물건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의 면적도 점점 확장되어 갔다.
작은 침대, 수유 의자, 모빌, 자잘한 젖병 용품과 세척 도구 수준이었던 아가의 물건은, 싱글 침대, 옷장, 의자, 각종 장난감 등등으로 순식간에 늘어났다. 심지어 지금은 거실에 있던 TV와 서랍장을 안방으로 몰아내버리고,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을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직은 작디작은 아가의 몸에 비해, 방의 침대와 거실의 매트는 '광야'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 보인다. 침대와 매트 위를 뒹구르며 다니는 아가를 볼 때면,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이 침대와 매트 크기를 압도해 버리는 듯하다.
평화와 안식이 깃들던 나만의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과 희망의 존재를 얻었으니 남는 장사 아닐까? 거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아가의 왕궁을 바라보며, 아빠가 더 내어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아마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와 같을 것이리라.
오늘도 아빠는 '깨물어 주고 싶음'을 마구 발산하고 있는 똥강아지와 함께 광야를 기어 본다. 엉금엉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