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Apr 09. 2024

그래, 그랬구나! 이제야 알겠다. (41)

    

출처 : MBC '무한도전'



  육아를 시작하며 내려놓은 것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피부에 크게 와닿는 것은 아마 '늦잠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몇 안 되는 삶의 낙 중 하나였던 늦잠이여, 언제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요새 우리 아가는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잠에서 깬다. 아가의 첫 끼니를 위하여 울리는 알람을 재빨리 ㄲ끈 뒤, 미끄러지듯 침대를 이탈하여 양치와 세수를 마친다. 안방을 빠져나와 살금살금 아가방으로 향하여 조용히 아가방 문을 열고 들어가다 보면, 방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아가와 눈이 마주친다. 아가는 아주 잠시 상황을 판단하는 듯 보인다.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가는 잠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밥 달라고!!' 소리 지르며 울어댔다. 여러 육아 정보를 통해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이미 밥때가 늦은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였다. 아기가 울게 되면 기운이 빠지면서 맘마를 줘도 힘 있게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관찰하다 보면 아기가 배고프다고 보내는 신호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초보 아빠는 매번 아가가 우는소리를 듣고서야 부리나케 몸을 움직이기 일쑤였다.



  그랬던 아가였는데, 지금은? '요래 되었다'. 아가의 침대 머리맡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아가 침대 안의 상황을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아기방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아기가 무얼 하고 있나 영상을 살펴보면 '키득키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다. 



  커다란 쿠션 위를 기어서 넘어 다니는 건 기본이고, 조막만 한 손으로 신고 자던 양말을 벗겨서는 물고 빨며 놀기도 한다. 침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의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파워 속독'을 하는가 하면, 뭐가 그리 신났는지 몸을 흔들며 댄스 타임을 갖기도 한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니?'



  나는 결혼을 한 후로도 늘 부모님께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면 늘 어머니께로부터 한결같은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데, 그 행복을 포기하려고 하느냐'라고. 그때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잘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아버지·어머니께서는 전부터 이따금씩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시며 "너 키우느라 참 행복했다"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힘들었다', '고생했다', '후회했다' 등등의 부정적인 말씀을 한 적이 없으셨다. 오히려 매번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시며 육아 이야기를 마무리하시곤 했다. 



  내가 부모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늘 순하고 착한, 절대 울지 않고, 언제나 씩씩한,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한 마디로 '거저 키운' 아기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고생은 단 '1'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럴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기가 주는 행복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늦잠도 못 자고, 여행도 못 가고, 친구도 못 만나고, 취미 생활도 못하고, 아가를 어르고 달래느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당최 모르겠다. 



  할 줄 아는 의사 표현이라고는 '맘마', '음마', '압빠' 그리고 냅다 울어 젖히는 것밖에 없지만, 어느 순간 해맑게 웃음 짓는 이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면 엄마·아빠의 고단함은 일시에 녹아내린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먹지도, 자지도, 싸지도, 못하는 이 나약한 존재가 주는 행복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난센스(Nonsense) 아닐까?



  '자녀는 아기 때 이미 평생의 효도를 다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녀가 아무리 말을 안 듣고,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려도 부모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자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참을 '인(忍)'자를 새긴다고 한다. 



  우리 아가도 언젠가 엄마·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그날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 오늘, 매 순간 아가의 모습을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놔야겠다. 



  아가의 미소, 웃음소리, 엄마·아빠를 부르는 옹알거림, 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하찮은 움직임, 오물오물 밥을 씹어 삼키는 모습까지, 아가가 온몸으로 표현하는 효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  



  우리 아가가 미운 네 살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떼를 쓰더라도, 중2병에 걸려 잠시 외계인이 되더라도,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기가 되어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할지라도, 엄마·아빠는 우리 아가에게 받았던 효도의 순간을 떠올리며 아가의 든든한 방패가, 울타리가, 그늘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런데, 우리 아가도 나중에 커서 '나는 아이를 갖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면 무어라 답을 해줘야 할까. 아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줘도 그때는 절대 모르겠지?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려나? 그저 멀뚱히 앉아서 엄마 얼굴만 떠올리려나...?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희망의 존재 (4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