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성공하고 싶다'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특히 지금 하는 일이 먹고살기 위해서 어쩌다 보니 입사하였다면, 더 그럴 것이다. 설령 적성에 맞는 일이라도 일과는 상관없이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기 마련이다. 내 취미는 디지털 드로잉이다. 퇴근 후에 재미로 조금씩 하던 취미가 주변 지인들의 칭찬과 지금보다 더 잘해보고 싶어지는 욕심에 3개월 드로잉 학원을 등록하였다. 퇴근 후에 3시간 동안 열심히 학원에서 배웠고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학원 수강을 마쳤을 때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출석하였고 인물 드로잉 중 첫 파트인 얼굴 드로잉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학원 수강이 끝나는 동시에 성취감은 자만심으로 변질하였고 어리석게도 ‘3개월 했는데 이렇게 늘었고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조금 쉬어도 금방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금 지나서 다시 시도하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 내가 세운 계획에 따르면 나는 인체 비율까지는 나아갔어야 했는데.. 그리고 처음 배웠던 것들도 가물가물해진다. 그 후엔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으니 다음에 해야겠다’로 바뀌게 된다. 처음 취미를 통해 즐거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압박감으로 다가오면서 미루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시작하기 전에 행복한 결과를 먼저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완벽에 가까운 성취를 이뤄낸 사람이고 이러한 도전을 한다는 것부터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타인과는 마치 다른 것 같은 특별함을 준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고 허비하는 시간에 나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걸 보니 역시 난 대단해’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런 달콤한 상상이 끝나고 나면 이제 진짜 시작을 해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내 목표는 저 멀리 있고, 당장 지금의 나는 출발점에 있으니 이상한 괴리감이 든다.
우리가 어릴 때 적성검사를 하는 이유는 스스로 어떤 성향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더 이상 나를 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과도하게 경쟁하는 학습을 강요받아서, 취미를 취미로 즐길 수 없다. 그런 방법은 배워본 적이 없어서이다. 생각한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한다면 ‘좋아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어버리기 마련이다. 또한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잘하고 싶어서, 욕심은 많은데 시작을 못하는 것이다. 계속 미루게 되고, 혼자서 ‘난 게으르구나’라는 함정에 빠져서 무기력해지고,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진솔한 대화를 해 보자. 처음 즐겁게 도전했던 목표는 의무감이 아닌 '재밌어서 하고 싶다' 였을 것이다. 회사에서처럼 상사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일상에서 잠시 힐링이 되는, 좋아하는 취미에 집중을 할 때 느끼는 그 몰입감과 조금씩 발전하고 있을 때의 성취감이 우리의 도전욕구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게으른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생각해 보자. 결과에 대한 걱정으로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되어 자괴감에 빠지지 말자. 우린 그저 '잘 해내고 싶었을 뿐'이다. 잘 못해내면 어떠한가, 계획대로 안되면 어떠한가! 이미 회사에서 월급도 받고 있으니 먹고살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이라도 시작하는 습관을 만들자. 신기하게도 시작을 하는 순간 잡다한 생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