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연초는 한국에서 보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예 없나? 아. 있긴 했다. 다만 순삭 했을 뿐.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새해까지 유럽에 있는 여행 프로그램과 연초에 시작해서 개강하기 전 돌아오는 여행 프로그램을 매년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정신없이 바쁘거나 한국에 없었다. 특히 니스 카니발에 참가하는 카니발 로드는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기에 2월 말. 개강 전 귀국하는 날까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은 크리스마스의 설렘, 연말과 연초의 뒤숭숭함 같은 감성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나에게 연말과 연초는 자주 찌들어 있고, 늘 피곤했으며 혹시나 하는 설렘으로 떠난 유럽에서 역시나 하며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랬었는데,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몇 년 만에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고 이제 새해도 한국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어색한 20년의 끝, 그리고 21년의 시작이겠지만
2020년의 하루하루는 우리 모두에게 어색하다. (그놈의 코로나) 늘 그랬던 것처럼 크리스마스는 연인이나 가족들과 보내고, 길거리 곳곳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잔뜩 들떠 있어야 했다. 연말은 그동안 바쁘단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이나 고마움을 표할 지인들을 만나야 했다. 또 새해는 내년의 파이팅을 기원하며 더 나아질 나를 기대하며 가족의 건강을 소원하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거나, 해맞이를 보러 가야 했다. 나는. 코로나가 없었다면 20년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는 나는, 유럽에 가 있어야 했다.
유럽의 연말과 새해는 생각보다 별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크리스마스 당일 그리고 1월 1일은 공휴일이기 때문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날은 야외에서 볼 수 있는 관광지를 가는 것이 좋다. 에펠탑이나 몽마르뜨 언덕 뭐 이런. 백화점이나 박물관은 절대 계획에 넣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연말과 연초에는 사건 사고도 많은 편이다. 또 미디어에서 자주 비춰주는 햇살 좋은 쨍한 유럽은 겨울이니까 당연히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시즌'은 참 좋다. 유럽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정말 진심이기에 곳곳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말도 안 되게 예쁘고 멋지다. 또 지나고 보니 겨울 시즌만의 분위기 좋은 유럽이 참 멋지기도 했다.
역시 지나고 보니. 후회할 것이 참 많다. 지금 이리도 그리워하는 연말과 연초의 유럽을 왜 그땐 온전히 즐기지 못했을까? 왜, 얼굴 하나 나온 사진이 없을까? 왜 춥고 쓸쓸하다며 투덜만 댔을까?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해' '감사하며 살아' 이런 말들이 내겐 좀 진부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당차게도 '글쎄요, 저는 그렇게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걸요?' 하곤 했었는데....
그랬는데 나이가 들고, 코로나를 만나면서 점점 진심으로 깨닫게 되는 말들이 많다. 특히 저 어바웃 타임의 명대사. 하루하루를 즐기며 사는 것.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것. 그땐 투덜대며 힘든 것만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때도 좋은 날들이었다. 더 좋은 날을 만들 수도 있었고, 더 좋은 추억을 만들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국에서 오랜만에 연말과 새해를 지내보니 어때?
음....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할 시간이 생겨서인지, 생각할게 많아져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이 시간들도 소중하게 여겨보련다. 지금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게 최선일 것 같다. 걱정은 많지만 최선을 다해 지혜를 모아보고, 성과 없는 한해였지만 티끌이라도 찾아서 칭찬해주고, 불평이 생기더라도 지나고 나면 소중해질 거라고 주문을 걸어보고.
힘들다고, 한국이 그립다고 생각했던 연말과 연초의 유럽을 그리워하는 날 보며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힘들고 걱정이 많다지만, 나중에 후회할 날 생각하며 눈 딱 감고 소중하다고 감사하다고 생각해보자고. 어차피 지나가는 시간과 겪어야 할 힘듦이라면 이왕이면 즐기며 지나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