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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Nov 06. 2022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 -

서평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 -



​책장을 넘기면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처럼 달콤 씁쓸한 맛의 칼럼들이 모여 있다.

달콤한 재미와 날카로운 통찰, 씁쓸한 냉소가 다양한 맛의 초콜릿 잉크처럼 우리를 유혹한다. 한꺼번에 많이 읽으면 너무 달콤하고 써서 이빨이 썩어버릴 것 같지만 일단 재미있어서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시대를 넘어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그림들과 시와 철학, 정치, 만화와 영화 등을 적재적소에 예로 들어준다는 것이다. 약간 칼럼 오마카세 셰프처럼 그때그때 어울리는 신선한 재료들의 칼럼들을 보기 좋게 내어준다.


김영민 교수님의 글의 밑바탕에는 예전에 출간한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도 그렇듯이 항상 죽음이 깔려있는 듯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은 더 명료해지고 허무의 안개는 조금 걷히는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과연 내가 잘살고 있는가? 죽음이 두려운 걸까? 죽어가는 고통의 과정이 두려운 걸까? 노화가 두려운 걸까? 잊히는 것이 두려운 걸까?' 이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인생이 허무의 강이라면 이 책은 작은 종이로 만든 나룻배 같다. 잠시 배 위에 올라와 삶과 죽음, 허무와 예술을 관조하며 달빛에 몸을 말리면 삶의 작은 위안이 된다.


​그럼 본격적으로 글을 써 보겠다.


'왕희손의 말 대로라면, 글 쓰는 사람은 용기를 가져도 좋다. 못난 글대로 누군가의 타산지석이 될 수 있으므로.'라는 책의 문장에 힘을 얻는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안 쓴 글은 아니라고...


<죽음>


'어젠가 닥칠 죽음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대상화할 필요가 있다.'


'죽음의 춤'


'춤을 추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유연해져야 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죽은 뒤에야 비로소 사후 경직이 찾아온다.'


'인생의 마지막 댄스 파트너는 다름 아닌 죽음이다. 심신이 유연하다면, 심지어 죽음마저도 유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지.'


​'죽음은 평등하고, 피할 수 없고, 어쩌면 고단한 인생을 사는 이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다.'


'죽음은 두려워할 만한 게 아니라고. 살아있을 때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정작 죽으면 죽음을 경험할 사람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 말 되네.


그런데 며칠 전 친구와 수다 중, 친구에게 우린 언젠가 죽게 될 거고,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두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40년 정도만 버티면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돈만 있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돈이나 벌고 40살 더 버틸 생각이나 하라고 했다.


어쩌면 죽음은 피할 수 있을 것만도 같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겠지.

그다음 문제는 40년 뒤에 다시 하도록 하자. (난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가?)



<마구>


산인이란! 치밀하지 못하고, 질서가 없고, 야무지지 못 한 사람.

한마디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장자는 쓸모없는 산목, 즉 성긴 나무야말로 쓸모없기 때문에 목수에게 베어지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오히려 쓸모없음이야말로 쓸모 있음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생각했다. 갑자기 왜 나무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읽다 보니, 나무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은 쓸모없었기 때문이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자청해서 그리된 것이라 한다.


난 아직도 살짝 궤변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장자는 멋있다. 세상 이치가 원래 그리 단순하지 않지 않는가? 캐릭터가 유우머가 있다. 비트 제네레이션이고 소위 말해 힙스터 같다.


아무튼 산목처럼 산인이야말로 자유인에 가깝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전도연 누나를 닮은 김영민 교수님은 자신을 감히 '산인'이라고 부를 깜냥이 되지 않아, 대신 '마구'라고 아호를 사용하곤 한다고 한다.


마구를 던지는 강력한 투수가 아니라 '마'포에 사는 호'구'라는 뜻이 '마구'라고 한다. 마구 김영민 선생님, 저는 마주(마포구 酒민)입니다. 맥주 한 잔 사주세요. ㅋ



<하루하루의 나날들>


역시나 노동보다 힘든 것은 지루함이다.


책에서는 '패티 스미스는 우리는 그냥 살기만 할 수는 없기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

'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일로부터 벗어나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구원이 있다.'라고 한다.


먼저 솔직하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알아야겠지!


영원히 뾰족한 언덕으로 돌을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 같은 우리네 신세라면, 기왕이면 굴리기 즐거운 돌, 가치 있는 돌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굴러떨어지는 산 아래 볼링핀 같은 것을 세워놔도 재미가 있겠다. 삶은 재미와 의미를 찾고, 보는 사람까지도 즐겁고 같이 미소 지을 때 가장 가치 있지 않을까?



<구름을 본다는 것>


'과도한 욕심이나 지독한 우울감은 빨리 소멸하는 것이 좋다.' 구름처럼...



<느린 것이 삶의 레시피이다>


'끝없이 독촉해대는 생활의 속도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짓. 구체성을 무시한 난폭한 일반화에 저항하는 훈련이다.'


이제 더 이상 일반적인 것, 평균적인 것은 의미가 없는 듯하다. 나의 얄팍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자. 나만의 눈금은 나에게만 적용시키자. 남들의 언어를 배워가며 조화롭게 춤을 추어야 한다.



<달콤함의 레시피>에서


'할머니 팡도르'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의 마음을 붉게 물들였다.


‘살아있는 동안 인간은 삶에서 달콤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

‘달콤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죽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에 달콤함의 레시피를 남길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은, 팡도르 할머니는 다음 세대를 위한 레시피를 통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한다.



​끝으로,

그래서 인생의 허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릇 천지 간의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소.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취해서는 아니 되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취하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마주하면 풍경이 되오. 그것들을 취하여도 금함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소.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고갈되지 않는 창고)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바이외다.'라고 소동파 선생은 말한다.


​어차피 허무할 거라면 달빛과 벚꽃같이 사라지지 않고, 돈으로 살 수도 없는 낭만을 안주 삼아 친구들과 허무를 노래하고, 가끔씩 삶에서 웃긴 레시피를 노래에 숨겨두며 슬플 땐 언덕을 오르고, 기왕이면 시시포스의 돌 대신 내가 구르며 낙하의 쾌락을 즐기며 살겠소.


이 책에 좋은 글귀들이 참 많다.


'빗질 자국이 남아 있는 마당이 빗질 자국조차 없는 마당보다 깨끗해 보인다.'


나의 빗질이 마구 삐뚤삐뚤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마음을 깨끗이 해 보이려고 빗질하듯 글을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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