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경록 Oct 29. 2023

<‘향수’라는 것을 처음으로 사 봤다. (나를 위해)>


나에게 향수란 그저 선물할 때 주는 작고 예쁜 병에 담긴 향기 나고 색깔 있는 예쁜 물에 지나지 않았다.

향수란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향기로 허세를 부리기 위한 비싼 액세서리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박혀 있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 본 애니메이션에서 악역들을 희화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장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난 향수보단 차라리 포근하고 꽃향기 풍기는 섬유탈취제가 더 좋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사실 향기 나는 액체라면 두르는 것보단 마시는 쪽이 더 좋았다. 내면과 영혼을 위한 향수라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향수도 외면이나 내면이나 과하면 촌스럽거나 탈이 나게 된다.



얼마 전 한경록 내장 노동연합 대표(간 지부장)가 계속해서 이따위로 술을 마시면 장기들이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포를 했다.

나는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 당분간 자중하겠다고 자세를 낮추었다.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놓치지 않는 편이다. 서로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하는 신호 아닌가!

그리하여 내 몸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당분간 금주를 선언한다.



26일째 금주하고 운동하고 연습하고 공부하고 기왕이면 몸에 좋은 것들 챙겨 먹으니, 몸속에서 밝은 무언가가 생겨났다. 거참 신기하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관리 시작해 보세요. 강추)

시간이 금결처럼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며, 부정적인 감정들은 마른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푸른 감정들이 새싹을 들이민다.


그리고 사흘전 오전 11시에 즐거운 마음으로 필라테스 하러 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기분 좋은 향기가 나에게 반갑다고 환영해 주는 것이다.

필라테스 선생님께 조심스레 물어봤다.


”혹시 이 향기가 향수인가요? 샴푸나 트리트먼트 향이 아니라?“


금주 기간에 운동도 하고 건강하게 살아서 감각이 깨어나서 였을까? 선생님은 향수를 즐겨 뿌리셨다고 했는데, 처음 향수의 사적인 감각을 느꼈다.


​물론 지금까지 지인들에게 선물할 때 향수를 시향 했었다. 그런데 스페셜한 선물이 아닌 일상에서도 이렇게 순간 기분을 바꿀 수 있다니, 지금까지 내가 알던 향수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향수라는 것.

일상에 자신만의 색채감 있는 아우라를 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생처음 나를 위해 향수라는 것을 사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토바이, 오디오, 복싱, 크래프트 비어, 싱글몰트 위스키, 커피, 정원 가꾸기 등 여러가지 취미와 취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향기나 취향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취향과 만날 때는 무척 설렌다.


나는 바로 선생님께 향수를 추천받고 백화점에 가서 시향한 후 몇 가지 향수들을 샀다.

아직 향수에 대한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시향만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아 세 종류의 향수를 샀다.

조 말론(Jo Malone), 딥티크(Dyptique), 바이레도(Byredo).


10월 바쁜 일정들을 씩씩하게 소화해낸 자신에게 작은 사치를 부려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향기로운 것들은 마시는 것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끝으로 빠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을 추천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거름종이에 향수를 걸러 마시고 취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영화이다. (스무 살쯤 본 영화인데,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네.)


세월이 바뀌면 취향도 바뀌겠지.

하지만 그렇게 스쳐간 취향들이 나의 향기일지도 몰라.




#조말론 #JoMalone #딥티크 #Dyptique #바이레도 #Byredo #빠트리스르콩트 #양화사랑한다면이들처럼


작가의 이전글 파란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