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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Jul 29. 2024

 <탁구는 감각의 대화이다>


지루한 장마철, 습한 날씨를 뚫고 탁구장에 들어선다. 환한 조명과 상쾌한 공기, 짙은 초록색 탁구대들이 마치 도심형 실내 수목원에 온 것처럼 상큼하게 나를 반겨준다. 3개월 전, 오랜만에 친구들과 탁구를 쳤다가 어릴 적 놀이본능이 깨어나 레슨을 등록했다. 어렸을 적부터 땀 흘리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축구, 야구, 씨름, 오징어 게임, 다방구, 딱지치기 등 온갖 땀 흘리는 어린이 사교생활을 많이 했었는데, 그땐 탁구가 그중 가장 귀족적인 스포츠였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흙먼지 마시지 않고 30분 동안 친구들과 쾌적하게 탁구를 칠 수 있었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탁구장에 모여있는 친구들과 돌아가며 치기도 하고, 복식 게임도 즐길 수 있는 어린이 살롱 같은 곳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탁구장, 3개월 동안 푹 빠졌던 탁구의 매력을 기록해 본다.​




첫번째, 몰입할 수 있다. 탁구장에 들어와 라켓을 꺼내고 잠시 조용히 앉아 심호흡을 하면 여기저기서 탁구공 튕기는 소리가 각자의 시계 초침 소리처럼 똑딱똑딱 들려온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하게 집중을 한 에너지가 이동하는 소리들이다. 눈을 감고 탁구공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40㎜의 하얗고 작은 탁구공을 맞추기 위해 스텝부터 라켓의 각도, 공의 회전까지 계산하다 보면,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1시간 동안 몰입하고 나면 쓸데없는 걱정들, 부정적인 감정들이 땀과 함께 개운하게 빠져나간다. 일종의 탁구명상을 한 것처럼 맑아진다.


두번째, 남녀노소 모두가 깔깔거리며 함께 즐길 수 있다. 탁구장에 가면 항상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탁구는 네트가 있어서 직접 부딪칠 일도 없고 다른 스포츠에 비해 부상도 적다. 실수를 해도 웃음이 나오고 복식으로 게임을 하면 웃음은 두 배가 된다.​


세번째, 많이 때릴 수 있다. 야구는 한번 때리면 다시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무진장 기다려야 한다. 또 골프는 한번 때리면 무진장 걸어가야 할 수도 있고, 축구는 공에 발도 못 대볼 수도 있다. 그에 비해 탁구는 1분에도 수십번 때릴 수가 있다.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들이 손맛을 빠르게 많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이다. 아직 초보라서 깊은 맛은 알 수 없지만 상대방과 공을 주고받으면 라켓에 짜릿한 느낌이 전달된다. 고수님들과 탁구를 치면 마구처럼 공이 휘어져와 내 라켓에 순간적으로 머물렀다 개구리 발차기하듯 밀어내고 애먼 곳으로 날아간다. 가끔씩 나의 리시브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상대방 쪽으로 넘어가면 이 맛에 탁구를 치는구나 싶다. 그리고 탁구를 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아무래도 귀싸대기 날리는 포즈와 비슷해서인 것 같다. 복싱을 배울 때 내 경우엔 때린 만큼 맞거나 더 맞았는데, 탁구는 아무리 공을 때려도 무섭지가 않다. 가끔 탁구공에 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다. 탁구를 통해 나는 생각보다 강인한 존재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네번째, 최고의 다이어트 운동이다. 탁구장에 자주 오시는 분들 보면 모두 날씬하다. 여러 운동을 해보니, 많은 운동이 하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복싱도 그렇고 탁구도 그렇다. 스텝으로 위치를 선정한 후 지면을 단단하게 밟고 허리로 이동하며 전달된 회전력이 어깨로 돌아가며 마지막에 손으로 임팩트를 줘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스쿼트 자세가 돼야 한다. 이 자세로 60분 동안 스텝을 밟으며 탁구를 치면 탈수기에 들어간 것처럼 땀이 탈탈 털린다. 그리고 나 같은 초보자는 공 주우러 다니는데 거의 에너지를 다 쓴다.


마지막으로, 날씨에 제약 없이 언제든지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탁구는 요즘 같은 우중충한 장마철에 특히 빛을 발하는 사계절 스포츠이고 비교적 비용도 저렴하다.​


​탁구는 감각의 대화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으로 주인공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로 돌아갔을 때에도 탁구를 치며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탁구란 감정과 감각을 주고받는 대화인 것 같다. 따뜻한 말과 감정들을 쿨하게 주고받는 운동이 탁구가 아닐까?​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탁구를 쳐보자. 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탁구공 넘어가듯이 빠르게 넘어간다. 삶에 있어 매번 의미를 찾으려 하기에 앞서 탁구처럼 재미를 찾아보자. 탁구를 칠 때처럼 어떤 감각을 느끼고 새로운 상대를 만나 배우고 경험하고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어제보다 성장했다면 그 하루하루의 재미는 의미가 될 것이다. 꼭 누군가를 이기지 못했더라도 그 경기를 즐겼다면 우리는 승리한 것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51069.html#ace04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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