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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n 20. 2019

방황하는 별들 1

방황하는 별들 1

연출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극장에 왔다. 학교 일 때문에 바빠 보이는 눈치였다. 항상 같은 학생 두 명씩을 데리고 왔는데 난 직감적으로 그들도 우리와 같은 배역을 맡아 연습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조바심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연습하던 친구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점점 말수도 부쩍 줄더니 어느 날부터 내게 말도 없이 극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해보았지만 그는 다른 일을 하겠다며 다음에 보자는 답장이 왔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한동안 홀로 연습을 했다. 연출의 제자들은 혼자인 나를 보며 경쟁자가 줄어서 무대에 올라갈 확률이 높아지겠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무대에 오르는 것만을 생각하며 홀로 연습을 했다. 

  두 명의 제자 중 키가 큰 친구는 마술이 특기였고 키가 작은 친구는 탭댄스가 특기였다.  키가 작은 제자는 내가 혼자 연습을 하면 은근슬쩍 내 근처에서 탭댄스를 추면서 연습을 방해하곤 했다. 나도 빨리 그만 두길 바라는 눈치 같았다. 함께 고생한 친구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오전에 연습실을 갔더니 연출의 제자들이 다른 학생들과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금방 끝나길 기대하고 뒤편에 앉아 있었지만 연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둘은 거울을 통해서 흘깃 나를 보고서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대로 연습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간다면 하루를 그냥 날리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짐을 싸고 무작정 연습할 곳을 찾아 나섰다. 뮤지컬 음악을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며 무작정 대학로를 거닐었다. 난 돈도 없고 연습실도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잠시 쉴 생각에 마로니에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돈과 연습실이 없어서 사진 속 무대 위에 올라  홀로 연습을 하는 날이 많았다 (지금은 없어진 TTL무대 2010년)

 유난히도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 문득 먼저 그만둔 친구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볼까 하는데 공원 안에 있는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저기서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른 아침이라 공원에는 간간히 새소리가 들려올 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망설임 없이 발성 연습을 한 후 대본을 들고 평소처럼 연습을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무대 앞쪽에서 붉은색 치어리더복을 입은 댄스팀이 나타났다. 큰 무대를 홀로 쓰는 것이 미안해서 양보하려 했지만 그녀들은 곧바로 구호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들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어 더 크고 우렁차게 연습을 했다. 조금 후엔 기타를 치는 사람이 나타나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또 조금 후엔 앰프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나타났다. 순식간에 대학로의 작은 공원에는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연습을 하다가 무대 위에서 잠시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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