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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n 20. 2019

울타리 밖에서

울타리 밖에서

 학교를 다닐 땐 막연하게 졸업만 하면 뭔가 될 줄 알았다. 어쩌면 함께 꿈을 꾸던 나의 동기들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학교라는 울타리를 나오는 순간 나는 혼자였고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때 깨달았다. 내 인생은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대학로의 수많은 작품들은 나에게 오디션에 참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경력 하나 없는 전문대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이었다. 서류전형에서조차 번번이 탈락을 하면서 처음으로 현실의 벽을 느꼈다.  교수님들께서 말씀해 주시던 꿈과 희망들이 무너져가는 것이 너무 허망했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함께 꿈을 꾸던 나의 사랑하는 동료들도 분명 나와 마찬가지로 현실과 싸우고 있을 테니까

 

오페라 아이다1963 (2014)


 무작정 대학로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다녔다. 티켓 가격이 만만치 않아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는 대학로로 향했다.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나도 언젠간 저렇게 무대 위에 서겠다는 간절함은 더 강해져만 갔다. 그러나  간절함만으로는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 표를 파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배우도 아닌 그들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저기...  배우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표 안 살 거면 귀찮게 하지 마세요!"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했지만 내가 표를 살 줄 알았던 그들은 모른다면서 귀찮아했다.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어질 때가 돼서야 지친 나는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벤치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키가 160 센티도 안 될 정도로 작고 얼굴이 까만 남성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같은 질문을 했다. 다행히도 그는 자신도 배우 지망생이라고 반가워하며 자기가 소속돼 있는 극장으로 가보라고 했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구십 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극장 문이 닫혀 있었다. 건물을 관리하시는 분이 사무실을 알려주셔서 힘차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위치의 극단 사무실은 다른 허름한 건물들에 비해서 번듯했고 보안이 철저했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왔다는 말에 극단 사무실 직원은 반갑게 반겨 주었고 잠시 후에 연출을 만날 수 있었다.  

  조금 피곤한 듯 보이는 연출은 면담을 하고선 대본을 던져주었다. 바로 공연에 올릴 수는 없지만 준비가 된 것 같으면 본인이 판단해서 무대에 올리겠다는 말과 함께. 대신에 오전부터 나와서 극장 정리를 하고 선배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는 그였다. 큰 소리로 연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와 근처 카페로 향한 나는 구석에 앉아 대본 표지에 적혀있는 내 이름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 올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본 위에 떨어진 눈물로 인해  제목의 몇 글자가 번지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맹세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돼야지'

그렇게 대학로 입봉작이 시작되었고 그 날은 떨림과 벅차오름으로 새벽까지 대본을 읽었다. 

   다음날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극장에 첫 출근을 했다.  놀랍게도 나보다 하루 먼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인천에 살고 있는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누가 봐도 미남인 남자였다. 인천에 살고 있는 그는 거리가 멀어 나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일어나야만 했음에도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열정으로도 지고 싶지 않았기에 나 역시 택시를 타더라도 늦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불평 없이 한 달 이상을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극장 청소와 연습실을 정리했다.

 그와 나는 경력이 없는 막내들이 맡는 대사가 제일 적은 배역을 맡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 첫 배역을 얻게 되어 신이 났지만 서로 더 많은 무대에 서기 위해 회차 경쟁을 해야 했다. 선의에 경쟁자였던 우리였지만 기존에 연습을 하고 있던  선배들의 심한 텃세로 인해 서로 의지하며 더 끈끈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린 잠자는 시간과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하고 늘 함께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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