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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n 20. 2019

나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2

나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2

 책상 앞에 앉아 주입식 교육만 받으면서 자라온 나에게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를 배운다는 것은  낯설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고교시절 전교에 한두 명 있을 법한 끼 많은 친구들과 함께 꿈을 꾸는 것은 하루하루가 설렘의 연속이었다.

  전과를 해서 서류상으로는 연극학과 일원이 되었지만 입시 준비를 하고 들어온 다른 이들에게 나는 값을 치르지 않고 무임승차를 한 사람처럼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모두들 나의 이름보다는 전과 학생이라고 불렀고 짓궂은 선배들은 전과자라고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위축되고 어색했지만 학과 행사에도 참여하고 과대표까지 하게 되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동료로서 학과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결국은 비니를 쓰고 촬영했다(극 중 숫자의 순서가 시간의 순서)

  드라마 제작 교과목 시간에 운 좋게도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드라마 내용은 남자 주인공이 하루 동안 준비를 한 후 여자 주인공에게 극장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후반부를 먼저 촬영하고 전반부를 나중에 촬영하기로 했다. 후반부를 촬영하던 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나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충동적으로 긴 머리를 짧은 머리로 컷을 했다. 

  그런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프러포즈를 준비할 땐 머리가 짧았다가 극장에서 프러포즈를 할 땐 갑자기 머리가 자라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연회 때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은 의아해했고 난 프러포즈 준비를 하면서 야한 생각을 해서 머리가 자랐다고 둘러댔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지만 감독을 맡았던 친구는 영상편집을 하면서 나 때문에 장학금을 못 받게 됐다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나중에 장학금을 받게 되었지만 우리들에게 그 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꿈으로 가득 차 있었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신문지를 깔고 값싼 안주에 소주를 마시며 서로의 꿈을 공유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흘린 땀이 그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었다. 밤이 깊어가고 동이 틀 무렵까지 별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다짐하던 그 시간들은 그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었다.

학교 내에서 올린 공연을 마치고 찍은 사진

시간이 흘러 객석에서 올려다만 보던 무대라는 신성한 공간에 나 역시도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술이 덜 깬 상태로 수업 전에 몸을 풀기 위해 아침 일찍 학교 안에 있는 연습실로 향하던 평범한 날이었다. 계단 옆 게시판에 붙어 있는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되었다. 졸업 전에 꼭 무대에 서리라 다짐하면서 학교생활을 하던 나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그날부터는 술도 마시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다. 덕분에 주인공은 아니지만 제법 대사가 많은 역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 열 시부터 밤 열 시까지(텐투텐) 두 시간 남짓한 공연을 위해서 몇 달에 걸쳐 준비를 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다면 서울대를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처음 전과를 마음먹은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서 더욱 욕심이 났다.

  주인공 역할로 두 명이 캐스팅되어서 이틀 공연에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한 친구는 공연 때도 연습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약속된 대로 연기를 하여서 다른 출연자들이 편하게 공연을 했지만 나머지 한 친구는 흥분을 해서 연습에서 했던 약속과는 다르게 연기를 하여서 공연자들을 당황스럽고 힘들게 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에게는 더 좋은 평을 받았다.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일까?'

  공연을 마치고 자신에게 물어보았지만 답을 낼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질문과 평생을 싸워가면서 배우 인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꿈꿔 왔던 시간이 끝나고 마지막 커튼콜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기에 후회 따윈 없었다. 따사로운 조명 아래서 나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동료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로 화답했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감격의 눈물이 무대 위에 떨어져서 조그마한 얼룩이 되었다. 그것을 보고 운명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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