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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 김윤후 Jun 20. 2019

방황하는 별들 2

방황하는 별들 2

  대학로 첫 입봉작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경찰이었다. 무대 뒤에서 경찰복을 입고 대기하다가 선배들의 대사에 맞춰서 약속된 타이밍에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남자 주인공을 심문하는 역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경찰입니다. 혹시 수상한 사람 못 보셨습니까?"

  내 배우 인생의 첫 대사였다. 그리 긴 대사는 아니었지만 지인들이 아닌 돈을 주고 온 사람들, 처음 보는 낯선 관객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참으로 두려웠다. 

"안녕하십니까 경찰입니다 혹시 수상한 사람 못보셨습니까?" 공연이 끝나도 200번씩 연습했던 첫대사(2011)


  그런데 내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선배는 공연이 끝나고 극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시켰다. 영화에서 형사 역을 맡은 배우들을 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려고 한 했지만 선배들은 연기를 대충 한다며 힘이 들어간 연기를 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공연 때는 내가 생각하는 경찰을 연기했다. 덕분에 그들이 포기할 때까지 연습은 계속되었다.

  후반부에 15분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경찰은 배우라기보다는 오퍼에 가까웠다. 등장하기 전까지 조명과 음향을 조정하고 잠시 등장했다가 퇴장하면 다시 오퍼로 돌아가고 커튼콜 때 인사를 하는 게 끝이었다. 그럼에도 힘들었던 시간들이 잊혀질 정도로 행복했다. 내가 설 수 있는 무대와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 있으니까.

  무대에 오르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같이 연습을 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극단에서 자리가 잡힐 때쯤 연락이 와서 반가운 한편으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술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다음날 있을 공연 생각에 잠시 망설였지만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기에  바로 약속을 잡았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제 헤어졌던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면서 신나게 연출과 우리를 괴롭혔던 사람들의 욕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각각 소주 한 병은 비웠을 무렵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아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강남의 유명한 호스트바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술잔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보았다.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운 옷과 명품 시계는 훤칠하고 잘생긴 그를 더욱 빛나게 해 주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달리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는 여유 있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배우보다 적성에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술잔이 오가면서 그는 동료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다들 잘생기고 화려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12시가 훌쩍 넘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마무리될 때쯤 그는 나에게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의를 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우리는 끼가 있어서 금방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몇 번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고 마지막엔 정중하게 거절하며 술값을 계산했다. 나에겐 제법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싼 술값이었다. 그가 말한 성공한 사람들처럼 슈퍼카를 몰고 아름다운 여성들과 화려한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무대에서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단지 그것만이 나의 인생에 목표고 전부였다.

  택시비를 주려는 그를 등지고 야간 버스에 탔다. 만원 버스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조심해서 가라는 그의 메시지에 미안함과 동료를 잃은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화려한 불빛들을 보며 다음에 또 보자는 답을 보내는 내 마음은 슬펐다. 반딧불처럼 작은 빛을 내던 별 하나가 그렇게 사라져 간 것이다.  

  '정답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우리에게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고 황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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