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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진 Jul 24. 2019

나는 이럴 때 쓰고 싶어진다.

작가의 일이란,

나는 이럴 때 쓰고 싶어진다.  


   

나는 내가 너무나도 많은 감정에 휩싸여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을 때 글을 통해 그 답을 찾아낸다. 가끔 한 감정만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기쁨과 슬픔 같은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그 두 가지 색이 섞인 혼탁한 회색처럼 느껴져 답답하다.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왜, 어떤 일로,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 차근차근 써 내려가다 보면 복합적인 감정들을 각각 분리된 곳에 분류해놓을 수 있다. 애매한 상태를 싫어하는 나에게 '글쓰기'는 아주 고마운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어느 때는 어떤 한 감정을 강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감정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봉인해놓는다. 언제라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말이다. 기쁠 때보다 슬프고 화가 날 때 더 큰 자극을 받는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항상 글로 풀어냈다.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글씨체만으로도 어떤 내용인지 알 것만 같다. 일렬종대의 반듯한 글씨체는 뭔가 좋은 일을 풀어낼 때, 모양보다는 내용에 집중한 듯한 휘갈겨 쓴 글씨체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있다. 내 일기장 중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의 기억들은 그래서인지 더 빛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내 속마음을 안전하게 토해내고 싶을 때도 글을 찾게 된다. 누구에게도 평가받고 싶지 않고, 내 이야기가 새어나갈 것이 걱정될 때, 글을 통해 모든 것을 토해낸다. 그렇게 다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한껏 후련해진다. 나로 인해 형체가 생겨나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글은 아마 내가 만들어낸 좋은 친구일지도 모른다.   

  

18살 때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매우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울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왜 갑자기 나한테만 일어나는 건지에 대해 원망 가득한 글을, 그러다 너무 우울해져 정말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됐을 때는 감정을 읽어내는 글을 썼다.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 보는 내 모습이 낯설어 당황스러운 감정들을 글로 풀어냈다. 나중에 건강이 회복된 후에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너무 어둡고 무서워 생각을 멈춰버린다.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며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된다. 작년에는 나를 자꾸만 끌어내리는 무언가를 떨쳐내기 위해 수단으로 글을 택했다면, 지금은 거만해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정말 힘들었을 때는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해 하루에 5편씩 글을 썼는데, 조금 괜찮아지니까 일기장을 펼쳐보지도 않았다. 선택적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닌, 한결같이 글을 써서 나의 변화를 뚜렷하게 마주 하고 싶다. 어두웠던 기억들도, 지금의 행복도 모두 유연하게 받아들일 때까지 말이다. 감정이라는 자극을 받았을 때만 글을 찾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글을 써서 어떠한 자극도 흡수해버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 지적 자극을 받아 글을 쓸 때가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의견을 정립하고 싶을 때, 글은 최고의 방법이 되어준다. 이때는 좀 더 꼼꼼하고,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심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다양한 관점으로 주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 그렇게 쓴 글들을 보며 내 생각의 변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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