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류 브랜드로의 진입 조건=패러다임 주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정의
통상적으로 가격이 비쌀수록 그 물건으로부터 얻는 기능적 효용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경제학의 한계 효용 법칙에서 묘사하는 것과 유사하게 가격이 올라갈수록 기능적 효용의 증가분은 감소하기 마련입니다. 즉 어떤 물건의 가격이 두 배 비싸다고 해서 두 배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효용이 가격이 비싼만큼 큰 것이 아닌데, 왜 우리는 명품에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기능적인 효용 이외의 것들 때문일 것입니다.
재화의 종류에 따라 Mix의 정도는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양품과 명품을 가르는 두 가지 요소는 "만족"과 "신뢰"입니다. 만족은 크게 자기만족과 사회적 시선에서 나오는 만족이 있습니다. 신뢰는 가격과 기능적 효용의 최적점을 굳이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고도 선택하게 하는 요소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족과 신뢰의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 둘이 혼합되어 고급스러운 아우라가 만들어집니다. 이 두 가지 요소에 기꺼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걸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의 프리미엄 도전
현대차는 작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 분리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제네시스는 디자인계의 두 거물(루크 동커볼케, 이상엽)을 영입하고 라인업 확장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는 기존 현대차는 양산차 회사로서 가격 대비 높은 기능적 효용을 주는 데 중점을 뒀다면 제네시스는 그 이상의 가치를 주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무엇으로 1류의 가치를 만들 것인가
일부 미디어는 현시점의 제네시스 모델들을 시승하면서 "현대차와 상품 차별화" 혹은 "현대차와의 판매/AS 분리"를 얘기하며 비판하는 의견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 미디어들은 차를 평가할 때 기능적 효용 위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제네시스에 현대차보다 단순히 더 높은 기능적 효용을 넣거나, 판매와 A/S망을 분리 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기능적 효용과 판매 인프라로 제네시스를 비판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지만 동시에 다소 성급한 일이기도 합니다. 일부 미디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판매망의 분리, 그리고 브랜드 스토리를 갖추면 사람들이 제네시스를 벤츠, BMW와 동격으로 봐줄까요? 그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들만으로는 2류가 될 수 있을 뿐 Top-tier로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제네시스는 양품이 아닌 명품을 지향하기 때문에 제네시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고민은 무엇으로 1류만 줄 수 있는 신뢰와 만족을 만들어낼 것이냐라고 봅니다. 이 부분이 충족이 안된다면 실제 기능적 효용이 경쟁차보다 높아도 인식과 믿음의 벽을 깨기 쉽지 않기 때문에 프리미엄 시장에서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프리미엄의 시작은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였다.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어떤 방법으로 최초의 신뢰와 만족을 형성해 프리미엄 브랜드에 진입했는지 근원을 살펴보면 디자인은 언제나 기본이었고 그 이상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를 통해서였습니다. 마케팅은 결국 제품이 아닌 인식의 싸움이고 어떤 키워드를 점유하는 지가 프리미엄이냐 아니냐를 가릅니다. 기존의 강자들이 가지고 있는 키워드를 뺏어내는 것은 상대의 실수 없이는 굉장히 힘든 일이며 이마저도 압도적인 실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하고 점유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이 새로운 키워드를 찾아내고 제시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이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로 올라선 이후에는 새 패러다임을 먼저 제시하지 않아도 너무 늦지만 않게 대처하면 프리미엄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벤츠는 그 자체가 자동차의 시대를 연 기업이었으며, BMW는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닌 운전의 재미가 있는 엔터테이닝 제품임을 제시한 기업입니다. 아우디는 콰트로를 통해 승용차에 4륜을 접목시키며 각종 랠리를 정복했습니다. 이들보다 후발 주자인 렉서스는 기존 유럽 브랜드들보다 품질, NVH를 강조하며 프리미엄을 단순히 기술력이 아닌 만듦새로 경쟁의 영역을 가지고 왔습니다.
(볼보는 안전, 롤스로이스, 벤틀리등은 럭셔리 등의 키워드에서 인식 1위를 차지)
그동안 대중차 브랜드들이 고급차 시장에 진출하는 데 실패한 것은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후발주자로 경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페이톤이나 K9이 아무리 기능적으로 훌륭하다고 한들, 벤츠와 같은 가격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만족과 신뢰의 영역이 아닌 기능적 효용이 자신들도 벤츠 못지 않다는 걸 강조하는 데 홍보를 집중했지만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뻔했습니다. 또한 최초에 렉서스와 인피니티의 결과를 가른 것도 누가 새 패러다임을 먼저 제시하고 주도했느냐가 컸습니다.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국 패러다임이 바뀌고 난 이후에는 비슷하게 잘하는 것으로는 새롭게 1류로 부상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 제네시스에게는 기회다.
현재 자동차 시장은 두 가지 커다란 새로운 흐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전기차/수소차", "자율 주행"입니다. 언제나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기존 경쟁 구도에 지각 변동이 생겨왔습니다. 보통 새로운 패러다임도 기존의 강자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기존의 강자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는 후발 주자가 치고 나갈 유일한 기회입니다.
테슬라가 순식간에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두 가지 흐름에 가장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이름을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네시스 역시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새로운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주도한다면 벤츠, BMW, 아우디 등과 나란히 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네시스는 우선 디자인 측면에서는 명확한 플랜과 함께 거물급 인력 영입을 통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패러다임 흐름을 봤을 때 현대차가 아닌 제네시스 입장에서 진정 고민하고 기술 투자를 해야 할 부분은 어쩌면 N 브랜드 프로젝트가 아닌 자율 주행과 친환경차 부분일지 모릅니다. N 프로젝트는 결국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의 경쟁이기 때문에 잘해봐야 2류가 될 뿐이고 1류로 인정받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제네시스에게 지금은 새로운 두 가지 흐름들에 어떻게 대응해 새로운 구도를 주도할 것인가를 찾아내야만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제네시스가 2류에 그치는 것이 아닌 1류로 도약하길 원한다면 말이죠.
빠른 협력 관계 확대도 방법이다.
현대차 스스로 새 시대를 디자인하고 주도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면, 자동차 업계 진입을 준비하는 구글, 애플 등과 협력 관계를 확대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치 삼성이 안드로이드와 협업했듯 말이죠. 이들은 소프트웨어에는 강점과 막강한 브랜드가 있지만 자동차를 개발하고 양산하는 데는 경험이 부족합니다. 때문에 이들과의 협업은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최근 자동차 프로젝트가 막힌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줄 것이 있는 지금이 단순히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갈 적기일 수 있습니다. 벤츠, BMW 등은 굳이 이들과 먼저 협력 관계에 나서지 않고 독자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 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 어떻게 프리미엄 자리에 올라설 것인지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중국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서구권에서 프리미엄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대접을 받지만, 서구권을 먼저 공략하는 게 힘들다면 중국 시장에서 먼저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 위챗, 디디추싱 등과 협력 관계 확대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의 미래를 기대하며..
어쨌건 한국의 브랜드가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노크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 자체가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는 굉장히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제네시스가 노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포스를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