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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Feb 17. 2019

<Fyre>를 봤다

사기꾼은 원래부터 사기꾼인 걸까?



<FYRE: The Greatest Party That Never Happened>는 뮤직 페스티벌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행사로 기억될 파이어 페스티벌의 흥망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파이어 페스티벌은 파이어(Fyre)라는 플랫폼 서비스의 홍보 수단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파이어는 소위 ‘유명인과 일반인을 연결해주는’ 부킹 앱으로, 셀러브리티가 사용자와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는, 이른바 돈 좀 있는 젊은 고객 대상의 VIP 서비스였다. 이 앱을 만든 CEO가 바로 다큐의 주인공 빌리 맥펄랜드인데, 빌리는 이미 20대 초반에 매그니시스라는 멤버십 신용카드 사업으로 뉴욕에서 나름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매그니시스로 친분을 쌓은 래퍼 자 룰(Ja Rule)과 함께 파이어를 런칭했다. 자 룰은 연예인들을 섭외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고, 빌리는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금을 끌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직원이 회의 중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홍보성 페스티벌을 여는 건 어떨까요?”라는 제안을 툭 던지고, 빌리는 거기에 꽂혀버린다.


빌리는 자 룰과 함께 놀러 간 적이 있는 바하마의 무인도를 떠올린다. 바하마의 수많은 섬 중에 노만스 케이(Norman's Cay)라는 곳을 페스티벌 장소로 낙점한 그는, 홍보가 될 것 같은 건 무엇이든 끌어다 썼다. 그중 그 섬이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25년 전 잠시 소유했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홍보 포인트가 됐다. “파이어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곳에서 3일간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되어보세요.” 블링크 182, 디스클로저, 메이저 레이저 등의 아티스트 라인업을 확정한 뒤, 그들은 홍보 영상을 찍으러 섬으로 날아갔다. 물론 그냥 가진 않았다. 슈퍼모델들을 대동해 1박 2일간 멋진 장면들을 영상에 담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다수의 인플루언서들에게 업로드하도록 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억 명의 켄달 제너는 자신의 계정에 단 한 개의 포스트를 올리는 것만으로 25만 달러(약 2억 8천만 원)를 받았다.


그리고 2017년 4월 28일, 그날이 왔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다큐의 후반부에서 보게 되는 그대로다. 사실 음악 페스티벌은 야외로 갈수록, 그러니까 지리적으로 도심과 멀어질수록 인프라(각종 설비 시설) 확보가 힘들기에 행사 준비도 빡세질 수밖에 없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지금까지 욕을 먹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다. 하지만 빌리가 지휘하는 파이어 페스티벌은 그 점을 무시하고 내달렸다. 웬만한 대규모 페스티벌은 대개 1년 전부터 행사 준비를 시작하는데, 파이어 페스티벌은 고작 두 달을 남겨놓고 착수되었고 심지어 중간에 (섬 주인한테 쫓겨나) 장소가 바뀌었을 때는 불과 45일이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또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것만은 아니었기에, 모두들 마음 한구석에 불안을 품고서도 흔들림 없는 리더의 태도에 의지해가며 일을 진행했다.


‘훌루’에서도 같은 소재의 다큐를 발표했는데, VPN 우회로도 (결제 방식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페스티벌은 당연히 참가자들에게 욕만 잔뜩 먹고서 다음 날 바로 취소됐고, 빌리는 그 후 여러 건의 집단 소송과 개인 소송을 당했다. 검사는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2018년 10월 연방법원은 빌리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한 남은 평생 기업 간부나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게 하였다. 판결문에는 ‘연쇄 사기범(serial fraudster)’이라는 말까지 들어갔는데, 소송 중 보석으로 나와 또 다른 티켓 사기를 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었다. 총 2600만 달러(300억 원) 규모의 신용 사기를 연달아 쳐댔으니 그 정도의 형량은 나올 만했다. 빌리의 변호사는 그의 정신 질환이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큐를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기꾼은 원래부터 사기꾼인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사기꾼이 처음부터 사기를 치기로 작정하고 일을 벌이는 건 아니다.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는 자기 머릿속에 그려놓은 목표를 향해서 달려갔을 뿐이고, 그 와중에 다른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그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점이지만, ‘공감 능력 떨어지는 추진력 강한 사장님'들은 생각보다 많고 그들은 종종 사기꾼이 아닌 사업가로 불린다. 빌리는 자신의 욕망과 그걸 받쳐줄 추진력이 사기 행위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조건을 마침 운 좋게도(?) 모두 갖추게 된 사람이었다. 성공의 경험에 기반을 둔 강력한 자신감까지 보유했던 그는, 그 전까진 측근들의 말마따나 “약간 너디(nerdy)하기는 해도, 똑똑하고 카리스마 있는” 사업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되묻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과 ‘누군가를 속이는 것’의 차이란 무얼까. 번드르르한 말로 투자자의 마음을 얻는 것과 그럴듯한 화술로 금융 사기를 치는 것 사이에는 (둘 다 예상치에 근거해 남의 돈을 받아내는 행위라는 공통점 외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결국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 미래에 베팅하는 사람을 우리는 사업가라고,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목표가 수단의 현실성을 넘어 내달리기 시작할 때, 그것은 때로는 도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사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후적으로 사기라 판명되어야만 앞의 과정이 사기로 인정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빌리가 드레이크를 10만 달러에 섭외했다고 뻥을 쳐서 3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아낸 건 명백한 사기지만, 삼성의 우두머리들은 그토록 악랄한 분식회계를 일삼았는데도 감방에 가기는커녕 사기꾼이라 불리지도 않는다. 사업과 사기의 차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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