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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Feb 02. 2019

<말하는 몸>을 듣고 있다

“엄마가 겪은 일들은 무엇일까. 엄마는 아직도 마비되어 있고, 겁먹고 있구나. 엄마는 평생 그 얘기를 저에게 안 해줄 것 같아요.”



<말하는 몸: 내가 쓰는 헝거>는 작년 12월 14일에 시작한 팟캐스트 프로그램이다. 1월 중순 우연히 알고선 바로 팬이 됐다. 록산 게이의 아름다운 회고록 <헝거>를 매개로, 한국의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관련해 10분 남짓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연자가 스스로 얘기를 이끌어가기도 하고, 인터뷰 후 자연스럽게 편집하여 독백하듯 들려주기도 한다. 형식상 눈에 띄는 부분은, 듣는 이가 출연자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배경음악을 사용하는 방식부터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타일까지, 한국에서 흔한 구성의 팟캐스트는 아니다. 실제로 제작진 중 한 명인 CBS 박선영 PD는 한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담 형태가 아닌, 좀 더 완결성을 가진 자전 에세이 컨셉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연자들 간의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팟캐스트를 잘 듣지 못하는 청취자로선, 그런 아이디어를 이 같은 결과물로 깔끔하게 구현해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반가웠다.



<말하는 몸>은 책 <헝거>의 챕터 수와 같은 88개의 에피소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16회까지 제작됐고, 지금까지의 에피소드 대부분이 무척 좋았다. 고마우면서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던 <헝거>만큼이나 좋았다. 그중 1화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 씨 편은 그가 평생 지녀온 오랜 아픔을 아주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경험해볼 수 있어서 특히 좋았고, 6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 씨 편은 우울증에 대한 나의 여전한 몰이해를 조금이나마 더 부숴준 것 같아 좋았다. 유독 울컥했던 건 5화 하리타 씨 편이었다. 그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자신의 엄마에게 고백했을 땐 이런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나(엄마)는 남자들이 그토록 드글거리는 시골집에서 여자로 살았는데, 그런 일이 없었겠냐고. 엄마의 이 말을 뒤늦게 곱씹으며 하리타 씨는 울먹인다. “엄마가 겪은 일들은 무엇일까. 엄마는 아직도 마비되어 있고, 겁먹고 있구나. 엄마는 평생 그 얘기를 저에게 안 해줄 것 같아요.” 나도 우리 엄마 생각을 잠시 했다. <말하는 몸>이 아니었다면 들을 수 없었을 이야기들을, 해보지 못했을 생각들을, 남자의 몸으로 한 켠에서 조용히 응원하며 듣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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