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비크는 괴물이 아니라 노르웨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작년 말, 소위 거장이라 불리는 세 감독의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연달아 발표됐다. 나오자마자 보았고, 세 편 모두 보고 또 보고 싶을 만큼 좋아서 두세 번씩 봤던 기억이 난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도 좋았고,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도 무지 좋았지만, 폴 그린그래스의 <7월 22일>은 특히나 너무 좋았다. 영화는 2011년 7월 22일 오슬로에서 일어난 총기 테러 참사를 소재로, 그날 벌어진 끔찍한 사건과 그 후 살아남은 자들의 사연 그리고 테러범과 그를 변호하는 사람의 심경을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불필요한 대사를 한마디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장면이 말로 담지 못할 힘과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래서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테러범 브레이비크는 왜 이민자(무슬림)를 그토록 적대시하는가? 그의 피해의식은 어디서부터 생겨난 걸까? 극우 단체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분노를 왜 주변의 무고한 약자들에게 쏟아내는가? 그는 왜 하필 미성년자들이 모인 노동당 청년캠프를 노렸는가? 스스로를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가해자들의 심리는 어떻게 분석되고 다뤄져야 하는가? 일흔일곱 명을 죽이고 수백 명의 부상자를 낸 살인마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이슬람 사원 총기 난사 사건, 심지어 최근 경남 진주에서 벌어진 아파트 살인 사건과도 맞물린다. 모두 혐오 범죄이자, 원인을 개인의 일탈로만 돌리기 힘든 사회적 참사이기도 했다. 영화 <7월 22일>의 모티프가 된 책이 있다. 노르웨이의 유명 저널리스트가 치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써낸 <One of Us>라는 논픽션이다. 테러범 브레이비크의 어린 시절부터 게임 중독, 애국주의, 이슬람·다문화 혐오까지 여러 키워드가 녹아 있는데, 저자는 “브레이비크는 괴물이 아니라 노르웨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평이 좋고 많은 독자가 읽은 책인데, 관심 있는 출판사가 국내에도 번역 출간을 해줬으면 좋겠다.)
<7월 22일>의 만듦새에 있어 한 가지 단점이라면, 모든 대사가 영어라는 점이다. 이 지적에 대해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제작 및 배급의 편의를 고려해 노르웨이 배우들에게 영어로 대사를 하도록 주문했다고 답했다는데, 아무리 노르웨이가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에다 국민 대부분이 영어를 공용어 수준으로 구사한다 할지언정 몰입을 방해하는 영어 대사는 좀 아니지 않나 싶다. 한편 동일한 7월 22일 참사를 다룬 <Utøya: July 22>라는 노르웨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7월 22일>보다 낫다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참사 당일 우퇴위아 섬에서 1시간 남짓 일어난 일들을 희생자들의 시점에서 극사실적으로 연출한 리얼타임 영화다. 온라인으로 어렵게 구해 볼 수 있었는데, 너무 리얼해서 더 무섭고 슬펐지만 내게도 <7월 22일>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