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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Sep 19. 2019

<기억의 발굴>을 읽고 있다 2

의제 강간 연령에 대하여

29세의 제프는 14세 웬디의 집에서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진 뒤 돌아가던 중 차를 세워 웬디에게 전화를 건다. 잔뜩 흥분한 채로. “너도 알잖아. 내가 방금 한 짓은…… 선생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해버렸다고! 최악이지. 난 방금 중대한 규율을 어겼어. 속이 좀 메슥거리네…. 미칠 것 같기도 하고….” 이어서 제프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어디에도 적어두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고는, 웬디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받은 뒤에야 진정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이 회고록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역겨운 장면 중 하나다.


제프는 이때 자신이 언급한 “중대한 규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성적 동의 연령(age of consent) 미만의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법정 강간(statutory rape), 즉 의제 강간 연령에 관한 법규다. 미국의 50개 주, 그중에서 웬디가 살던 캘리포니아주의 의제 강간 연령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에 이미 18세였다. 위의 장면을 비롯해 이후의 몇몇 대사로 짐작건대, 제프는 자신이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과 불법으로 성관계를 가진 성인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 경우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강간죄로 처벌받게 된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성적 동의 연령은 ‘성적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나이’를 뜻하고, 의제 강간 연령(법정 강간 연령)은 그 나이를 기준으로 (강제성과 상관없이) 강간 여부를 결정하는 개념이다. 이 책의 주제에 관해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이 개념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국내에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고 깊이 들어갈수록 쉽지 않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의 낮은 의제 강간 연령(13세)에 관해서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논쟁이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지만, 관련 법규가 당장 쉽게 바뀔 모양새는 아니다. 얼마 전 개정된 아청법에는 ‘만 13세 이상 만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의 궁핍한 재정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하면 자발적 의사와 무관하게 최소 징역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이 담겼다지만, “궁핍한 상태”라는 모호한 조건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많은 이들의 공분이 이해될 만큼 얄팍할 뿐이다.


한편, 의제 강간 연령을 상향 조정 하자는 의견에 대해 인권운동가나 페미니스트 중에도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입장인즉슨 대략 이런 것 같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 또한 하나의 중요한 인권이기에 그 부분이 침해받지 않아야 하며, 청소년이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나이 자체를 조정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익명으로 기고한 어느 그루밍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여성은 “(어린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가 아니었던 상황을 세밀하게 접근하는 제도와 사법기관의 변화가 필요”하며, 의제 강간 연령을 (16세로) 올리는 것은 구조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활동가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존재처럼 법이 낙인찍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의제강간 연령을 16세로 높인다면 16세와 18세의 차이는 얼마나 되는지도 애매하다”면서 “단순 나이보다는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어떤 권력 관계가 적용했는지 등 성폭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맥락과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법적 판결이 피해자 혹은 약자의 특수성을 고려해 섬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인데, 글쎄, 이러한 원론적 주장이 의제 강간 연령 상향의 근거를 제대로 반박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무엇보다 성적 자기 결정권과 의제 강간 연령이 서로 충돌하는 개념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둘은 오히려 상호보완적으로 같이 가야 하는 권리와 법제가 아닌가 싶은데, 가령 청소년의 진정한 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의제 강간 연령으로 취약한 지점을 보호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은밀하게 벌어지는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연령)를 마련하는 일은 서로 대립한다기보다 둘 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그 의의가 있을 테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가장 먼저 침해당하는 것은 대부분 상대적 약자의 자기 결정권 아니던가?


더구나 설혹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연령이 16세로 상향되더라도 예컨대 15살 청소년과 17살 청소년이 성관계를 갖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15살 청소년과 21세 성인이 관계 시 문제가 된다는 것인데, 이때 15세 청소년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과연 어떤 식으로 얼마나 잘 발휘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듯싶다. 바로 이 지점이 <기억의 발굴>의 핵심 문제의식 중 하나일 테고 말이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기소로 이어지고 재판부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의 전 과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률이므로, 여러모로 의제 강간 연령에 관한 논의는 앞으로도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참고로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의제 강간 연령을 16세로 정하고 있는데(뉴욕주는 17세, 캘리포니아는 18세), 이런 미국도 성적 동의 연령이 10세인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1880년에는 37개의 주가 성적 동의 연령을 10세로 정하고 있었고, 12개의 주는 12세, 그리고 댈라웨어주는 10세에서 7세로 낮추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여러 페미니스트 그룹이 이끈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성적 동의 연령을 18세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몇몇 주에서 동의 연령이 16세로 조정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1920년경에는 거의 모든 주에서 16~18세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현재 미국의 16~18세라는 성적 동의 연령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명백히 여성 인권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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