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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May 02. 2020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을 출간했다




호주의 20대 여성 작가 브리 리의 회고록이다. 이 번역서는 국내 주요 서점들에 ‘정치/사회’ 또는 ‘사회과학’ 분야로 입고되었다. 국외와 국내의 도서 카테고라이징에는 각자의 합당한 기준이 있을 테지만 메모아(memoir), 즉 회고록의 경우 국내로의 번역 출간 시 적절한 분야명을 찾는 게 애매할 때가 종종 있다. 회고록이라는 장르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아우른다. 그 이야기의 글감은 과학이 될 수도, 정치나 경제가 될 수도 있다. 미술, 음악, 스포츠, 범죄, 요리 등도 가능하다.


그러나 회고록은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다. 여기서 모든 게 출발한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원형적인(그리고 창의적인) 것’이라는 경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이야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들어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도 그렇다. 이 책에는 사법 제도 안의 생태나 법조인의 삶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한 젊은 여성의 일상과 그의 치열한 고민이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사회과학’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처사임은 분명하다.


국내 도서 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층위의 분야가 동일 선상에 섞여 있다. 예컨대 ‘에세이’와 ‘경제’가 각기 다른 분야로 나뉘고, ‘인문’과 ‘역사’가 각자 큼직한 영역을 차지하기도 한다. 나는 늘 이것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경영서든 과학서든 실용서로 불리든, 모든 좋은 책은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저마다 튼실한 독창성과 주관성을 견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도서 시장의 카테고라이징은 독자들이 보다 다양한 세계로 진입할 기회를 줄이고, 선입관 없이 좋은 책을 판별할 기준을 흐리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스트 필립 고레비치가 말한 대로, 논픽션이 소설보다 예술적 기교나 상상력,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믿음은 우월감에 기댄 편견이다. 반면 이 책을 ‘좋은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나로서도 이른바 좋은 사회과학 책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에세이 분야에 집어넣는 건? 얼핏 합리적으로도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은 꽤나 모험적인 일이다. 그러니 어느새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그저 회고록이라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가지고 펼쳐보게 된다면 좋겠다. 분야에 개의치 않았으면 좋겠다. 분야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책이 더 많아져도 재미있겠다. 그렇게, 책에 있어서도 분야라는 울타리가 좀 더 허물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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