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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May 12. 2020

Midlake의 2집 앨범을 오랜만에 들었다

Midlake [The Trials of Van Occupanther] (2006)



음악 없이 산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하던 때가 있었다. 세상을 향해 한껏 곤두선 내 안의 감각과 허영이 요동치던 20대 때는, 그래서 힘겹기도 했지만 그래서 종종 짜릿했고 거기엔 늘 음악이 있었다. 지금은? 음악 없이 잘만 산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이란 대개 이런저런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 따위가 됐고, 대부분은 지적 결핍감을 채우거나 세상사를 걱정 또는 관조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 덕에 내 일상은 더 파삭해졌고, 예전에 느끼던 쫀득한 감정 같은 건 이제 아득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하여 SNS에 손대지 않을수록 삶이 풍요로워지듯, 뉴스를 멀리할수록 내 삶이 더욱 여유로워지리라는 확신 또한 최근 들어 다시금 갖게 되었다.


얼마 전 애플뮤직에서 ‘2000년대 인디 음악 대표곡’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거기에는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던 내 청춘의 시간을 가득 메운 배경음악들이 몽땅 들어 있었다. 그러다 그중에서도 유독 많이 들었던 밴드 중 하나, 미들레이크(Midlake)의 이 앨범을 그야말로 십수 년 만에 다시 정주행해보았다. 대개 음악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젊은이의 것이다. 이 음반에는 십여 년 전 멤버들의 반짝이던 그 재능과 기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사·작곡을 도맡았던 팀 스미스는 당시 자신이 이토록 아름다운 앨범을 만들어낼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명반이 그렇듯, 예컨대 혁오의 <23>이나 새소년의 <여름깃>처럼,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두 번 다시 만들기 어려운 음반이었음을 절감하게 될 순간은 훌륭한 아티스트라면 언젠가 한 번쯤은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미들레이크의 이 앨범은, 2020년대인 지금 와서 듣기엔 사운드상으로 촌스런 느낌도 다소 풍기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선율을 품고 있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2006년 당시 나는 이 앨범에 대해 이렇게 끄적거렸었다. “곱게 밟히는 낙엽처럼 듣기 좋은 멜로디, 그 자체로 매혹적인 팝음반. 아케이드 파이어나 폴리포닉 스프리보다도 아름다운 하모니. 1인칭 화자인 밴 아큐팬더의 시련(trials)을 담은 연작 컨셉에 걸맞은 스토리와 분위기도 좋음.” 조금 청승맞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감상평이다. 그때 그 시절만큼은 아닐지언정 이토록 오랜만에 들어도 좋게 다가오는 음악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위안이 되어주는 것 같다. 아직도 음악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최소한의 신호이기도 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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