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 회고록의 역사는 미국이나 영국에서조차 짧다. 장편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는 이 자전적 이야기 장르가 ‘메모아(memoir)’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게 된 지는 불과 몇십 년밖에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오래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때에도 나는 소로우의 <월든>이 ‘메모아’로 불리는 것을 듣거나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다닌 학과가 아닌 다른 곳 혹은 어딘가의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에서는 회고록을 문학의 한 분야로 다뤘을 수도 있지만, 주목할 점은 ‘메모아’라는 장르가 여전히 국내 독서 시장에선 거의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고록’ 하면, 전두환이나 이명박의 회고록…과 같이 아주 협소한 의미에서의 자서전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국내 문학계에선 지금껏 회고록을 자전 소설 혹은 자전적 에세이로 부르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산문이라고 퉁치거나, 심지어는 자서전(autobiography)과 혼용하기까지 해왔다. 자서전이 저자 본인의 일평생에 대한 자기 기술적 작업이라면, 회고록은 자신이 경험한 특정 주제에 관한 주관적 스토리텔링이다. 또한 회고록은 저자 자신이 아닌, 자신과 세상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긴 여행’이다. 그래서 회고록은 항상 ‘나’에서 출발하지만 그 영역은 끝없이 확장 가능하다. 평생 양서류를 연구해온 생물학자가 자신이 사랑했던 두꺼비에 대해 쓴 이야기, 성소수자가 자신의 폭력적이었던 연애사를 되돌아본 이야기, 심지어 평범한 성인이 열세 살에 스치듯 겪은 어느 사건에서 비롯한 덤덤한 이야기도 회고록이 될 수 있다.
물론 회고록 쓰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회고록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민주적 성격이 강한 장르지만, 자신을 치열하게 돌아보며 미세한 기억까지 들춰내는 일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다수의 시집과 회고록을 펴낸 저명한 미국 작가 메리 카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회고록 작가는 왜곡한 과거를 일일이 털어놓아야 하고, 반성과 불확실성을 목소리에 반영해야 한다.” 회고록의 핵심은 기억이자 경험이고, 그것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진실이어야 한다. 소설과 달리 회고록은 진실에 기반을 두었을 때 제 의미와 가치를 갖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논픽션과 픽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하다고 가장 소리 높여 말하는 부류는 밑천이 드러난 거짓말쟁이 작가들이다.”
그러니 회고록만큼 어려운 글쓰기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자기의 경험과, 다른 이의 경험과, 자신이 창조해냈다고 믿는 경험을 짜깁기해 쓰는 것은 회고록이 될 수 없을뿐더러 그러한 방식으로는 회고록 비슷한 것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 회고록을 쓸 수 있으며, 회고록을 쓰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한 좋은 대답이다. 한편 좋은 ‘글쓰기 책’ 대부분이 그렇듯, 이 책 역시 글쓰기에 대한 책만은 아니다. 메리 카는 글쓰기에 대한 관점과 방식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은 곧 우리 삶에 대한 관점과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꼭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좋은 글을 골라 읽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책에 더욱 안성맞춤인 독자일 것이다.
메리 카는 자신이 소설보다 회고록에 맞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며 이렇게 말한다.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을 좋아하는데도, 직접 쓰다 보면 두 번째 쪽에서 모든 인물이 죽어 있거나 기억 속의 실존 인물로 되돌아간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회고록으로 눈을 돌리기 5년 전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쓰려고 시도했을 때도 그랬지만, 내 경우에는 이야기를 지어내다 보니 꼭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열의가 식어버렸다.” 소설을 읽으며 독서에 대한 열의가 식는 경험을 아직도 종종 하는 나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다. 더 많은 국내 독자들이 회고록의 매력을 느끼고, 나아가 국내에서도 (소설이나 시 분야에서처럼) 훌륭한 회고록 작가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