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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Oct 11. 2020

ATCQ - Check the Rhime

<Late Night with David Letterman>




1992년 3월에 방송된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이 라이브 영상을 종종 찾아보게 된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2집 수록곡 “Check the Rhime”의 밴드셋 공연이자 그 쇼의 첫 출연이었다. 언젠가 이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특별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후반으로 갈수록 나아지긴 하지만, 이 쇼에서 파이프 독은 유달리 랩을 못한다. 전반적으로 어눌하고, 발음은 뭉개지며, 가사를 놓치기도 한다. 그런 파이프 독을 큐팁은 마치 어린 동생 어르듯 눈을 맞추며 이끌어간다. 당시 나는 이 영상을 보며 큐팁의 능숙함과 파이프의 미숙함을 새삼 확인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2011년에 제작된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는 이때의 상황에 대한 부연 설명이 나온다. 파이프는 이날 방송을 하기 며칠 전, 생애 첫 당뇨 진단을 받았다.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였다. 건강하다면 70~100이어야 할 혈당 수치가 몇천 수준으로 뛰었지만, 파이프는 고민 끝에 공연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날 무대 위의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해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모든 게 슬로우모션 같았어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죠. 말문이 막혔고,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트라이브는 이 방송 직후 LA로 날아가 이튿날 <데니스 밀러 쇼>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국 파이프는 병원에 입원했고, 그 TV 쇼에는 큐팁과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 둘만이 출연해 공연을 해야만 했다. 다시 보면, 이 “Check the Rhime” 라이브 영상은 그 후 그룹이 걸어간 다사다난하고도 찬란했던 길의 예고편처럼도 느껴진다. 큐팁은 그 존재 자체로 확고한 믿음을 주는 천재 뮤지션이었고, 파이프는 여러 아픔을 감내해가며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애쓴 아티스트였으며, 이 둘 간에 반복되던 갈등과 화합의 케미스트리 속에서 트라이브만의 음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영상에서 가장 또렷하게 엿볼 수 있는 무형의 지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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