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리슨 Nov 26. 2020

그래미의 횡포와 우리들의 분노

큐팁(Q-Tip)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후 삭제된 영상



2021 그래미 어워즈의 후보가 발표됐고, 위켄드(The Weeknd)의 이름이 단 한 부문에도 오르지 않은 데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팬들은 물론이고 적잖은 언론도 레코딩 아카데미 후보 심사 위원회의 결정에 의문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위켄드 본인이 어제 올린 “그래미는 여전히 썩어 있다(The Grammys remain corrupt)”라는 트윗은 그 정서에 또 한번 큰 불을 지폈다. 그래미가 오래전부터 ‘편향적이고 보수적인 화이트 그래미’였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래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시상식이기에(우리가 권위를 불어넣어 주고 있기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논란과 보이콧은 끊이질 않는 것 같다.


<재즈가 된 힙합>의 12장에는 이 같은 그래미 어워즈의 오랜 ‘횡포’와 그것의 역사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저자 하닙 압두라킵은 매우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래미의 오만함과 얄팍함, 그들의 랩 장르에 대한 무지와 반감, 그리고 백인 중심적 보수성과 우월 의식 등을 까발린다. 그러면서 2018 그래미 후보에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ATCQ)의 마지막 앨범이 들어가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을 언급한다. ATCQ는 앞서 2017 그래미 시상식에 초대되어 출연진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을 펼친 바 있었다. ATCQ를 향한 존경을 줄곧 표해온 앤더슨 팩을 비롯해 버스타 라임스, 컨시퀀스, 그리고 세상을 떠난 파이프 독의 목소리가 함께한 그 무대에서, ATCQ는 도널드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하늘 높이 주먹을 치켜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객석에 앉은 백인머리들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그날 ATCQ는 ‘정치적인’ 공연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인 완벽한 그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0개월 뒤, 레코딩 아카데미는 ATCQ를 새로운 그래미 시상식 후보에서 완전히 배제해버렸다. 위켄드처럼 말이다. 여기에 어떤 변명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미가 어떤 짓을 벌여왔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의도적 배제라는 것을 눈감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 큐팁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즉흥적으로 올렸다. “백인이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지 않았으니, 이건 우리에게 일종의 경고인 것인가? 우리는 가장 흑인답고 세련된 그룹이었어. 우리가 드러내려 했던 것, 우리가 보여준 것들이 바로 그런 거였다고. 이 트라이브의 마지막 앨범은, 그 잘난 후보 명단에 오른 다른 자들의 것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아. 다 좆도 필요 없어. (…) 좆같은 놈들이 우리한테 거기까지 가서 공연을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해놓고는! 내 형제를 잃어놓고 내가 젠장, 그 무대에 서고 싶었겠어? 그 쇼의 피날레를 버젓이 맡겼으면서 막상 앨범은 빌어먹을 후보에도 올리질 않았다고? 트라이브의 마지막 앨범을? 내 친구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도 않은데!”(<재즈가 된 힙합>, 357p)


어느새 슬픔으로 가득 찬 큐팁의 인스타그램 영상은 곧바로 삭제되었지만, 이미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분노를 새긴 뒤였다. 하닙 압두라킵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술에 시상 제도를 연결 짓고, 그 수상 여부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일은 우리가 하는 어리석은 짓 중 하나다. 그러한 방식은 우리의 상당수가 음악을 향한 열정에 처음 불을 지폈던 이유와 목적을 역행할 뿐이다. 그래미 같은 쇼가 대상을 취사선택하여 왕관을 수여하는 산업에 기대어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은 더더욱 어리석은 부분인지도 모른다.”(354p) 하지만 그럼에도 압두라킵은 우리가 그래미와 같은 시상식을 품고 갈 수밖에 없다면, ATCQ와 같은 행보가 우리에게 뜻깊은 순간을 선물할 수도 있을 거라 말한다. 그래미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던 큐팁이 그토록 분노했던 것도, 실은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큐팁 혼자만의 유산이 아닌 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위켄드의 분노와 그 분노를 이해하는 이들의 분노를, 우리는 그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흔한 에피소드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미 또한 더는 그들만의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ATCQ - Check the Rhi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