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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Apr 18. 2021

<나의 아픈 고양이에게>

어느 반려동물 간병인의 짧은 고백




<나의 아픈 고양이에게>라는 작은 출판물을 제작한 적이 있다. 부제는 ‘어느 반려동물 간병인의 짧은 고백’. 얇은 소책자와 사진엽서, 스티커 등을 편지 봉투에 넣은 형태로, 지금도 몇몇 독립 서점에서 판매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우리의 첫째 고양이는 1년째 심각한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간혹 그 시간이 감옥 같아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픈 동물을 간병하며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멍청함과 무지함이다. 우리는 작고 여린 생명체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따위로 동물을 들이지만, 그 결정이 이후 십수 년간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갈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좋기만 할 리 없다. 삶이란 게 본디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라 해도, 생의 비루한 구체성 앞에서 그런 추상성은 대개 무용한 것 같다. 오직 지금을 사는 동물과, 과거와 미래까지 모두 살아가는 인간은, 애초부터 다른 종족이다. 동물과 사람은 부자연한 동거 속에 끊임없는 모순을 자아낸다.


돌아보면 그땐 고양이에 대해 참 몰랐다.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고 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을 여러 권 사 보기도 했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책 같은 건 대부분 쓰잘데기없다. 그나마 경험이 조금 도움이 될 뿐. 지금 우리에겐 둘째 고양이가 있다. 한때 소홀했었기에 늘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하나뿐인 고양이. (그때는 어쩌다 두 마리를 들일 생각을 했을까. 우리 주제에.) 둘째는 건강도 성격도 예전과는 몰라보게 나아졌다. 가장 신경을 쓰는 건 음수량과 치아 관리다. 예전에는 이 둘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둘째는 어릴 적 길냥이 생활을 하면서 건사료와 빵에 입맛이 들어 습식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게 한다. 여섯 개의 물그릇을 집 안 곳곳에 떨어트려 놓고, 생수에 수돗물을 섞어주기도 한다. 정수기를 추가로 놓아둘 때도 있고, 한 번 입을 댄 물그릇은 가급적 바로 갈아준다. 2년 전 스케일링을 받은 뒤로는 어금니 닦이는 일에 특히 신경을 쓴다.


아픈 고양이를 1년 반 간병하고 난 뒤로는,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 마음과 노동에 대해 생각한다. 돈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우리는 운 좋게도 한두 달에 몇백만 원씩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진료, 입원, 약, 수액, 처방사료, 수혈 등)을 어떻게든 감당해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걸 신장질환 고양이의 보호자들이 모이는 유명 온라인 카페에서 알게 되었다. 제발 고양이를 키우지 마세요, 고양이뿐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지만 이 말이 항상 입에 머물렀다. 너무 비관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딱히 방도가 없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건 분명 축복이지만, 그때의 후회하는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지금도 기억한다. 만약 우리의 둘째 고양이까지 투병을 겪게 된다면, 물론 견뎌내기야 할 테고 더 잘 해낼 자신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좌절하고 후회할 것 같다. 고양이를 들이는 일이 상상으로도 두려운 가장 큰 이유다. 그저 우리에게 남은 이 고양이와 평생을 함께하다 한날한시 다 같이 떠날 수 있음 좋겠단 생각을 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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