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담한 거실에 어울리는 아담한 스피커를 산 뒤로 매일같이 음악을 듣는다. 진즉에 살걸. 내가 음악을 정말 좋아했던(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또다시 새삼 느끼는 요즘이랄까. 생각보다 멋진 소리를 들려주는 새 스피커로는 한동안 크루앙빈(Khruangbin)을 가장 많이 들었다. 우리 모두의 사랑 크루앙빈, 단순하지만 가장 멋진 음악을 하는 바로 그 밴드를. 마침 지금 마감 중인 (곧 출간될)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생은 단순하기에 빛이 났다.” 단순하기에 빛이 나는 예술의 묘미를 알아가는 기분이 쑬쑬하다. 예전처럼 많은 걸 소화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갈수록, 결국엔 단순한 맛을 선호하는 쪽으로 취향이 좁혀지는 것 같다. 음악도, 영화도, 책도. 형식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최근엔 일본 밴드 차이(CHAI)를 가장 자주 듣는다. 몇 년 전 내한 공연 소식을 듣고서 몇 곡 찾아 들어본 것 말고는 낯선 밴드였는데, 최근에 나온 3집 앨범 [WINK]를 무심코 들었다가 완전 빠져버렸다. 댄스펑크/인디팝이라 부를 만했던 1집과 2집도 들을수록 너무너무 좋지만, 색깔을 다소 달리해 힙합/알앤비를 끌어온 이번 세 번째 풀랭스 앨범은 정말이지 이전보다 한결 미니멀하면서도 풍성하고 부드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이 앨범부턴 우리가 한때 열렬히 사랑해 마지않았던 미국 레이블 서브팝(Sub Pop)과 계약하여 새롭게 제작한 데다, 마인드 디자인(Mndsgn)이나 릭 윌슨(Ric Wilson)과 같은 멋재이 아티스트들과도 협업했다.
좋은 앨범이란, 남들의 의견과는 전혀 무관하게 모든 수록곡을 자꾸만 듣고 싶어지고 듣게 되는 앨범이다. 그리고 그 아티스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되는 앨범이다. 엄청난 능력과 감각으로 이토록 친숙하면서도 신선하고 황홀한 곡들을 한 앨범에 빼곡히 채워 넣은 것도 대단한데, 자기만의 언어로 ‘카와이(귀여움)’를 새롭게 정의하도록 여성들을 임파워링하고자 한다는 밴드의 슬로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프리마베라 사운드와 피치포크 뮤직 페스티벌, NPR 타이니 데스크 등에도 섰고, 맥 드마르코나 휘트니 같은 밴드와 함께 투어를 다닐 만큼 유럽과 북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이들을 향한 세계인들의 그 사랑엔 이제 내 사랑도 한 움큼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