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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Jul 10. 2021

<언캐니 밸리>를 출간했다



애나 위너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그가 내 친구인 듯 친근하게 느껴진다. 비슷한 취향과 코드를 공유하는, 마냥 편했던 20대 시절의 친구처럼. 우리 모두가 그랬듯 허영과 냉소를 적당히 품고 있지만 그게 꼴 보기 싫진 않은 친구. 어울리길 좋아하지만 혼자 있길 더 좋아하는 친구. 가끔씩 존경스런 마음이 드는 친구. 대중예술과 서브컬처를 사랑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며, 인생을 향유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한 친구. 그리고 현실에 치이고 불안에 잠기면서도 “옳다는 느낌을 좋아”하는, “나 자신이 옮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사랑”하기에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나만의 삶을 찾고 싶어” 하는 그런 멋진 친구. 그런 친구 같은 작가가, 세상 부러운 필력과 감각을 비현실적으로 발휘해 써낸 것만 같은 책이 <언캐니 밸리>다.


한국의 요상한 도서 분류 체계(경제경영, 에세이, 사회과학, 소설 등 층위가 전혀 다른 영역이 ‘분야’라는 명분으로 구획된)로 보자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 책은, 메모아(memoir)라는 장르의 미덕에 충실하다. 저자가 경험한 실리콘 밸리와 스타트업 문화라는 소재를 가지고 소설처럼(소설적 장치를 통해) 정교하게 구성하여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간 스토리텔링 문학이다. 한 서점 MD분은 이 책을 보더니 자기계발 분야로 넣으라고 조언했다. 에세이는 어떻겠냐는 얘기도 들었다. ‘경제경영 분야의 독자’는 실용 지식이나 효용을 찾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분야라는 벽으로 단절된 독자군을 양산해온 건 과연 누구일까, 어느 업계 책임일까. 실리콘 밸리의 실상과 일하는 젊은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성찰하는 이 책을, 결국 나는 경제경영 매대에 ‘우겨’ 욱여넣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들 사이에 놓인 모습이 조금 안타깝긴 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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