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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Dec 16. 2021

메리 루플의 매력 중 하나라면

<나의 사유 재산> by 메리 루플

얼마 전 <나의 사유 재산>의 표제작 ‘나의 사유 재산’에 관해 문의 메일을 주신 독자분이 있었다. 50대 남성으로서 부인의 폐경기를 이해하고자 ‘멈춤’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이 책을 읽어가는 중인데, ‘나의 사유 재산’에 이르러 몇몇 구절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간략한 설명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적당히 응하고 넘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진중한 메일은 왠지 성실한 답장을 해야겠단 맘이 들도록 했다. 게다가 나는 메리 루플의 글이 가진 독보적인 구체성에 큰 매혹을 느끼는 독자이기도 하기에, 내가 느끼고 이해한 바를 나름 상세히 답변해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해석을 전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조금은 재미있게 다가온 측면도 있었다. 그 독자분은 내 답변이 만족스러웠다고 회답을 전해 왔다.


메리 루플의 산문은 그의 시만큼이나 시적이지만 동시에 그의 시만큼이나 구체적이다. 루플은 내가 아는 시인 중 가장 구체적인 시와 산문을 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는 그의 책을 펼칠 때마다, 다섯 번 읽었던 글을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읽어 내려갈 때마다 더욱 새롭고 선명한 표상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회화적이라거나 섬세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특유의 구체성이 그의 글들에선 한결같이 묻어난다. ‘나의 사유 재산’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은 책의 수록작 중 가장 긴 에세이이지만 연상 작용에 따라 진행되는 몇 타래의 작은 이야기들은 한 문장 한 문장 또렷한 이미지와 서사 조각 들을 눈앞에 그려낸다. 때론 좀 지독하다고까지 느껴질 만큼.


열여섯 살의 메리 루플이 브뤼셀 외곽의 콩고 박물관에서 아프리카인의 머리로 만든 슈렁큰 헤드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장면이라든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작은 ‘아기 머리’로 만들어 달걀 상자에 넣어두는 상상의 장면 등은, 그 상당한 구체성 덕에 읽는 이의 감각을 덜컥덜컥 열어젖힌다. 열두 개의 사랑하는 머리를 소유하는 일은 곧 욕망에 기인한 사유 재산을 지키려는 짓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누구도 쉽게 떠올리지 못한 죽음과 이별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방책일 수 있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머리를 작은 인형과도 같은 슈렁큰 헤드로 만들어 달걀 상자에 보관하는 상상에 매번 빠지게 된다. 내 머리도 누군가의 달걀 상자 속에 (상상하기 힘들 만큼 못생긴) 아기 머리로 간직될 수 있을까 어줍게 상상해보며.







작가의 이전글 <언캐니 밸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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