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계약한 원고를 2년이 훌쩍 지나서야 출간했다. 백인 남성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마크 헤이머는 60대 중반의 영국인으로, 북아일랜드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그야말로 파란의 청춘을 보낸 뒤 서른 즈음 웨일스로 이주해 현재는 카디프의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다. ‘두더지 잡기: 노년의 정원사가 자연에서 배운 것들’이라는 한국어판 제목과 부제는 가급적 영국판 원서에 충실하게 지었다. 요즘 세상에 60대에게 ‘노년’이라는 말을 함부로 붙여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원래 심장이 좋지 않던 헤이머가 최근 다시 심질환이 도져 출판 관련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그의 삶을 감히 노년의 삶이라고 부를 이유가 남보다는 조금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하(負荷)가 많은 삶을 살았으니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고 나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열여섯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집을 나와서 2년 가까이 홈리스로 지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18개월 동안 강가와 숲속을 하염없이 걷고, 겨울철 몇 달간은 상점에서 일하며 버려진 아파트에서 추위를 피해 머무르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렇게 살아보지 못해 알 순 없지만, 그건 근 2년이라는 시간을 외롭고 두렵고 낙담한 육체로 살았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성장기 청소년으로서 마땅히 제공받아야 했을 물리적 양분과 건강을 거의 보장받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헤이머는 부랑자 생활을 그만둔 뒤에도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노동해야 했으며, 마흔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창의적 활동, 즉 글쓰기를 병행하고자 일용직 정원사이자 두더지 사냥꾼이 되었다.
이 책은 두더지라는 작고 귀엽고 신비스런 동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만큼이나, 현대인이 자연과 어우러져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삶이 어떤 형태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미문이 아닌, 다소 투박하리만치 단아하고 고아하게 쓰인 문장들에도 나는 애정이 간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어찌할 수 없는 아재 감성’을 조금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말갛고 초롱초롱한 그의 시각과 태도에는 충분히 음미할 만한 가치들이 녹아들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두더지와 두더지잡이라는 야생의(?) 소재를 실증적으로 다루면서도 매우 문학적으로 쓰였다는 점은, 이쪽 분야에서는 흔히 만나보기 어려운 매력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고민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책에도 끊임없이 마음이 끌리는 거겠지. 요즘 읽고 있는 책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별안간 자연에 애정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굳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왜 필요하냐며(자연의 잔인함과 시골사람들의 가혹함을 비판하며) 대도시의 (아파트) 라이프가 가지는 매력을 찬양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라고 자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자연 곁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성가시거나 매운지는 나도 조금 알지만, 자연과 가까운 삶이 우리 모두에게 어느 순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해지기 마련이리라 나는 믿으니까. 우리의 도시적 삶에는 명백하게도 치명적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이 책은 그런 내게 자연과 가까운 삶의 본질을, 그 가려진 의미를, 진정 중요한 지점들을 툭툭 건드린다. <두더지 잡기>가 내게는 휴식 그 이상의, 매우 귀하고 값없는 책으로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