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에는 사소한 기쁨과 가벼운 흥분이 깃든다. 그래서 반갑다. 가볍고 사소한 즐거움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틈만 나면 잊어버리니까. 나도 좋아하는 걸 좀 더 말하고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우린 언제나 그런 순간들을 좇으며 살아왔었다. <시선들>은 가장 좋아하는 여행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지만, 그보다는 완벽한 여행책이라 말하고 싶다. 잠시만 펼쳐도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므로. 나는 사람들이 어째서 이토록 신비한 책을 놔두고 <인간실격>과 같은 고약한 고전에 시간을 들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캐슬린 제이미의 <시선들>은 고전이 아니다. 이 책은 클래식이다.
얼마 전 한 도서 리뷰에서 ‘에세이 갬성’이라는 표현을 봤다. 오랜만에 접한 표현인데도 살짝 불편했다. 대체 에세이 갬성이란 뭘까? 야들야들한 주제와 문장들로 한때 국내 에세이 시장을 점령했던, 뭐 그런 에세이 책들을 비꼬는 말인가? 심지어 그런 에세이 책이 아닌 책에까지 그런 표현을 입히려는 이유는 뭘까? 뭐가 됐든 간에 아직도 이런 표현이 살아 있음에 놀랍고 아쉽다. 그런 관념이, 무엇보다 소설을 에세이보다 우위에 위치시키면서 그런 말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그렇다. 10여 년 전쯤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로 일군의 뮤지션들을 싸잡아 평가하려 한 몇몇 음악평론가들의 허황한 시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시선들>은 거의 완벽한 에세이 모음이다. 어떤 번역서들은, 그것이 애초에 원문으로서 갖고 있던 원초적 성질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어로 싹 변모한 모습조차 야금야금 뚫고 나온다. 그렇게 본래의 감각이 어찌할 수 없이 우리에게 다다른다. 이 책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들로 수놓이지 않았다. 그냥 시적인 글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소 불친절한 에세이집이자 아주 친절한 시집이라고 소개하면 어떨까.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토막은 캐슬린 제이미가 밤하늘의 초승달을 친구와 함께 탄 비행기 속에서 바라보는 짤막한 에피소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저 비행기 안에 있는 기분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기내 옆 좌석에 앉은 캐슬린 제이미의 동반자가 된다. 완벽한 여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