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을 굳이 이렇게 팔아야 하나?
안녕하세요! 카라멜팝콘 입니다!
수요일에 개봉한 <봉이 김선달>이 인기몰이 중이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평점이 8점 이상일 정도로 매우 높은데요, 일단 먼저 개인적으로는 8점 짜리 영화는 절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죠.
우리나라에서 봉이 김선달이 가지는 신비함과 천재성은 여전히 엄청난 흥미를 유발하곤 하죠? 하지만 김선달(선달은 장원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은 애석하게도 실존인물이 아닌 설화 속 인물입니다. 부당하게 축적한 부를 몰래 도둑질하고 돈있는 자들에게 사기를 쳐 가난한 백성들의 마음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그런 신출귀몰한 천재도둑에 대한 로망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에 대한 설화가 생겨났다는 것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봉이 김선달>의 시대적 배경은 병자호란, 정묘호란 이후 조선 효종 시기입니다.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양반과 관리들에게 착취를 당하던 시기에 지방 유지들을 비롯해 왕이 있던 궁궐도 털어버린 김선달의 일화들을 담고 있습니다. 봉이 선생이라는 호 역시 닭을 봉황으로 속여 판 사기극에서 비롯되었구요.
정통사극이 아닌 코믹사극으로서 충분히 가볍고 재미있습니다. 유승호가 연기하는 김선달은 언제나 유쾌하고 재치넘치게 모든 사기를 즐기면서 하는 타고난 사기꾼입니다. 보기만해도 심쿵하게 하는 잘생긴 외모는 물론이고 어떤 누구와 대화를 해도 통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은 덤이구요. 유승호가 능청스러운 연기를 이렇게까지 맛깔지게 해낼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 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청나라 군대 소속으로 싸우는 김인홍(김선달의 본명)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는데, '오 잘생겼다'를 저도 모르게 내뱉더라는...
그 전쟁터에서 알게 된 보원(고창석)과 견이(시우민), 나중에 조선에서 의를 맺은 윤보살(라미란)과 함께 사기로 조선을 헤집어 놓는 내용입니다.
수준 높은 코미디는 아닙니다. 웃음을 억지로 짜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과한 설정들이 많습니다. 물론 웃기긴 하죠. 하지만 그렇게 작정하고 넣은 웃음코드들이 코미디가 아닌 개그콩트처럼 느껴져 어이없는 실소가 터질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코미디는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게 되면 그걸 보는 순간에만 즐겁고 마는데요, <봉이 김선달>이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처음부터 코믹사극을 표방했기에 스토리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김선달이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워낙 많은데 그것들을 많이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인지 스토리가 늘어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메인 플롯인 대동강 스토리는 120분짜리 영화인데 70분쯤부터 시작됩니다.
메인플롯으로 넘어가기 위한 서브플롯이 너무 길고 많다보니 관객 입장에선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기극 자체도 뭔가 매우 치밀하지는 않습니다. 개연성을 가진다기보다 뜬금없다는 느낌이 강하구요. 뭔가 좀 그럴듯하고 관객들마저도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의 사기극은 절대 아니니 너무 머리 쓰실 필요 없이 그냥 편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로만 따지자면 조선판 <캐치미 이프유캔>은 커녕 김명민, 오달수의 비슷한 분위기의 <조선명탐정>이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조선명탐정>은 속편까지 내놓은 꽤 성공한 코믹사극이거든요. 실제 김명민과 유승호, 오달수와 고창석의 캐릭터는 유사점이 많아 충분히 비교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유승호의 전역 후 필모그래피가 아쉬워집니다. 작년 말 개봉했던 <조선마술사> 역시 크게 흥행하지 못했었는데요. 드라마 <리멤버>로 나름 선방하더니 불과 반년만에 유승호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라진 느낌입니다. <조선마술사>나 <봉이 김선달>이나 영화적 완성도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인데 관객들이 이렇게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은 배우의 인기와 팬심이 영화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고창석과 라미란이 함께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실 코미디 영화로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건데요. 역시나 두 분의 코믹연기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특히 창석이 형님의 보통보다 우월한 사이즈의 헤드는 유승호, 시우민에 의해 더욱 '대두'되곤 하는데요, 이것도 웃음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미란 누나는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나올 때마다 터뜨려 주시더군요. <응답하라 1988>에서의 정봉이 엄마가 오버랩되는 듯한 자연스러운 개그.
가장 아쉬운 배우는 시우민입니다. 역시 쟁쟁한 연기자들 사이에 있다보니 비교가 더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김인홍을 닮고 싶은 사기유망주이지만 아직 유약하고 상황판단이 미숙한 어린 친구죠. 시우민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엑소의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우민의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전 크라임씬을 보고난 이후 시우민을 꽤나 호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티가 아닙니다...ㅜ)
깃털처럼 가벼운 이 영화를 그나마 붙들어 주는 것은 역시 조재현의 몫입니다. 당대 최고 부자이자 권력가이지만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한 성대련이라는 악역으로 조재현이 등장할 때면 영화는 마치 정통사극 같은 진지함이 생깁니다. 이런 코미디를 붙들어 놓는 연기의 힘. 코믹연기를 하는 4명의 배우들 사이에서 혼자서 힘의 균형을 이루어 놉니다. 이 영화에 조재현의 연기가 없었더라면 정말 삼류코미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머지 4명의 배우들 때문에 오히려 조재현만 더 돋보이지 않았나 싶네요.
기본적으로 사기극, 추리극은 관객들과 단서를 공유하면서 사건을 진행해 가고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예상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 그 단서들을 재조합해 생각지 못한 결과를 도출해야 힘있는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그런 측면에서 <봉이 김선달>은 <명탐정 코난>처럼 마지막에서야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데다가 결말은 예상을 뛰어넘으려다 보니 억지스럽거나 유치한 부분도 있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렇게 마지막에 한꺼번에 터뜨리고 설명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 전까지 전개가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관객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차라리 <봉이 김선달> 본연의 에피소드에 더 충실했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외국인들에게 대동강 물을 파는 것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스토리 구성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안 좋은 소리를 많이 했지만 그것은 이 영화가 지금 받고 있는 평점 8~9점짜리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지 이 영화 자체가 몹쓸 영화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팝콘에 콜라 사들고 가서 2시간 즐기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무난한 킬링타임 영화입니다.
스토리의 방대함이나 배우들을 봤을 때 2시간 영화보다는 퓨전사극의 16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 영화에는 티켓파워보다는 시청률파워를 가진 배우들이 더 많으니까요.
(5개: 재미+작품성=어머, 이건 꼭 봐야해!)
(4개: 작품성or재미=딱히 싫어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보면 좋을 영화)
(3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2개: 취향을 심하게 타거나 굳이 안 봐도 될...)
(1개: 왜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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