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알프스에 간다니!?

샤모니에서 만난 첫 알프스

by 바위타는 은설

원정을 대비하며 훈련을 이어가던 동안,
제민님의 격려와 칭찬 덕분에 제 자신감은

어느새 조용한 확신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조금 긴 휴가를 가는 것뿐 아닐까?” 싶을 만큼
가벼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국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편에서 슬며시 걱정이 올라왔습니다.


“내가 과연 4,000m가 넘는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사실 저는 20대 후반만 해도

겨울 한라산 백록담조차

오르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는 체력도 약했고, 추위도 많이 탔고,
레이어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초짜였죠.


하지만 무엇보다 제민님의 응원 덕분에
“지금의 나라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작은 확신은 저를 용맹한 마음으로 무장시킨 채

알프스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샤모니, 첫인상


제네바 공항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고

샤모니로 이동하며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들판과 작은 마을이 이어지는 풍경은

언뜻 보면 한국의 시골을 지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지만,

그 뒤로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산과 산맥들은
“아, 나는 지금 정말 알프스에 왔구나”
라는 사실을 단번에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샤모니 시내에 들어섰을 때

가장 놀라웠던 건
따가운 햇빛에도 불구하고
빙벽화나 설상화를 신고
등반 배낭을 멘 사람들이
거리 곳곳을 지나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자유로운 분위기와 이질감 덕에
머나먼 곳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샤모니에서는 어디에 서 있든
하얗게 눈 덮인 몽블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을에서는 원근법 때문에 낮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동상 앞에서, 알피니즘의 시작을 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시내로 나와 걸을 때
몽블랑 초등과 관련된 인물 동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몽블랑 등정을 위해 상금을 내걸었던 소쉬르,
초등자로 널리 알려진 자크 발마.


그리고 오랫동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의사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


발마와 함께 몽블랑을 등정했음에도
발마의 단독 업적으로 알려져 있었고,
가브리엘은 별다른 해명 없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고 합니다.


후대에 그의 일기가 발견되며
초등의 진정한 동반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를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앞에서 장난스럽게 사진을 찍었지만
원정에서 돌아온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이 훨씬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알피니즘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 유럽인들이 알프스에는 악마가 산다고 믿던 시대.
정보도, 장비도, 기술도 충분하지 않던 시절이었겠지요.


그 두려움을 넘어서
처음으로 빙하를 건너고
미지의 산을 오르려 했던 사람들.


그들의 시대와 지금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현대의 아무리 용맹한 등반가라 해도
그 시대의 도전정신과 용기를
그대로 계승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은 어쩐지 조금 안도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함께할 사람들


저녁을 먹으러 다시 시내로 나갔을 때
이번 몽블랑 원정에 함께 오르게 될
현정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코오롱 등산학교 설상반에서
박태원 선생님의 조였고,
그 인연으로 이번 원정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이킹과 백패킹 경험은 풍부하지만
설상 경험은 거의 없다고 해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늦은 점심으로 먹었던

햄버거 맛은 솔직히 조금 아쉬웠지만
시내를 함께 걸으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장비점을 둘러보던 중
선생님의 후배라는 창렬 선배님과

잠깐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때는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지만,
이후 몽블랑 원정에 합류하여

누구보다 든든한 큰형님으로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샤모니는 역시 알피니즘의 도시답게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빙벽화, 설상화들이
무척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무는 샤모니의 첫 날밤


그날 밤 9시까지 밝은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알프스에 오다니..."


긴 여정의 첫 페이지 같기도 했고,
어쩐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여행을
드디어 시작하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길다면 긴 보름간의 휴가에서

몽블랑에 할당한 시간은 단 7일.


다음날부터는
드디어 알프스에서의 첫 고소적응 훈련—
브레방 트레킹을 나서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