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우리
큰아들이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 전 어렵게 꺼낸 말. "엄마, 그 아이랑 헤어졌어요"
아들이 언젠가 남자는 엄마 닮은 여자에게 끌린다고 했기에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그 아이가 잘 지내길 바란다고 했다.
소꿉놀이 같이 보였던 아들의 첫사랑을 통해 과거 나의 스무 살을 소환해 본다.
1. 후광이 불러온 첫사랑
1992년 무렵, 재수를 하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오후, 딸랑 거리는 풍경소리와 함께 그가 들어왔다.
핑크색 셔츠, 하얀 얼굴, 단정한 첫인상과 그의 뒤로 빛이 환하게 따라 들어왔다. 진짜 후광을 봤다. 모든 게 정지된 찰나의 순간.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주문을 받으러 다가갔는데 가슴이 쿵쾅거려서 버벅거렸다. 뒤를 돌자마자 내 속에서 하는 말, "아 망했다" 눈이 질끈 감겼다.
잠시 후 그에게 동석자가 왔다. 아는 오빠였다. 즉, 그는 아는 오빠의 절친이었던 것이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쪽지 하나
다음 날, 그가 다시 카페를 찾아왔다. 주스를 한 잔 마셨다. 또 다음 날도 왔다. 또 주스를 마셨다. 용건이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계산을 마치고 잠시 멈칫하더니, 쪽지 하나를 건네고 갔다.
" 우리 사귈래요?"
아버지의 가운데 이름처럼 '빛날 희(熙)'를 품고 있던 그 오빠와 나의, 그렇게 어설픈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전화와 편지로, 서툴고 설레는 풋풋함 그 자체의 극치.
3. 먼 길을 돌아 걷던 2프로 부족한 연애
그는 수업 없는 날마다 내려와서 데이트를 했다. 프림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영화를 봤다. 그런데 어딘가 2프로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먼 거리로 돌아 걸으며 시간을 채웠지만 그 어색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가 몇 번이고 손을 잡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매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어렵게 꺼낸 말이,
"너, 혹시 결벽증 있니?"
"아니요", 그리고 또 어색함.
우리의 연애는 그런 것이었다. 가깝고도 먼, 설레지만 닿지 않는.
4. 입대, 그리고 매직아이
몇 달 후 그는 안동에 있는 부대로 입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의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라일락 향 잔뜩 담아 다시 편지로 이어졌다.
드디어 첫 기차를 타고 면회를 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 하회탈 말고는 아는 것 없는. 안동으로...
그는 외박인지 하루 휴가인지 같이 밥을 먹고 시내를 걸었고, 집에 데려다준다며 함께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사고 기차를 탔다. "매직아이"였다
나는 기차 안에서 책에 코를 박고 눈을 한가운데로 모아 초점을 흐렸다. 숨겨진 그림을 찾겠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찡그리는 나를 보며 그는 엄청 웃었다. 며칠을 눈을 모아 하트와 별과 숫자들을 찾아냈고 그때 느껴지는 황홀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5. 제대 열흘 전, 매직아이가 풀려버리다.
실습과 공부로 정신없이 학교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의 제대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휴가 날 밤, 그가 살짝 취한 모습으로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3년 동안 손 한번 잡지 않았는데 보자마자 와락 껴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졸업하면 결혼하고 바로 유학 가자."
군대에서 수백 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말이었고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준비도, 아무 감도 없이 그 순간을 맞이했다.
내 마음속에서 뜻밖의 반응이 일었다.
징그러웠다. 신비감도, 설렘도, 3년의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감정도 한순간에 달아났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서 굳은 얼굴로 곧바로 들어와서는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다음 날 아침,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전화도 받지 않고, 편지를 부쳤다. 헤어지자고.... 그리고 제대 열흘을 남겨두고 헤어졌다.
6. 세 번의 우연, 지하철 유리문 너머로 흘러간 인연
시간이 흘러 나는 간호사가 되었고, 동료들과 회식을 하러 간 자리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영문도 모르고 단칼에 헤어짐을 당했던 그가 물었다.
"도대체 왜 헤어진 거야?"
해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술에 취해 있었고, 일행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몇 년 후, 3호선 교대역 지하철에서 다시 마주쳤다. 나는 지하철 문 밖에, 그는 지하철 문 안에. 눈만 휘둥그레진 채 문이 닫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몇 년이 더 흐른 뒤, 삼성동 거리에서 그의 절친을 만났다.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그 절친이 물었다.
"근데 왜 헤어진 거야, 도대체."
그리고 안부를 전해줬다. 중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매직아이는 초점을 잃으면 곧바로 평면의 어지러운 무늬로 돌아온다. 우리의 인연도 그랬나 보다. 억지로 초점을 맞추던 힘이 풀리는 순간, 환상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았던 것이다. 그저 어디서든 가운데 이름처럼 계속 빛나기를 빌 뿐이다.
아들이 군복무하면서 격고 있는 이별의 슬픔가 운데,
감정을 억누르며 "그 아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제 진심이에요" 그리고 "좀 아프지만 저는 괜찮아요 엄마"
하며 복귀를 위해 버스를 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두두둑 떨어졌다.
우리 아들은 어떤 심정일까?
그리고 그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던 핑크 셔츠의 후광. 기차 안에서 눈을 찡그리며 매직아이를 들여다보던 나. 제대 열흘 전 하염없이 울던 나.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랬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스물의 나였고, 그것이 나의 첫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