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을 보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 3월의 마지막 주를 오롯이 진격의 거인보는데 썼다.
총 96편에 달하는 장편 애니메이션인 만큼 방대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일주일 봤으니... 대충 하루에 15편 정도는 본 셈이다.
한달이 지나 기억은 벌써 희미해졌지만, 그럼에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강렬했던, 잊히지 않는 몇 장면들을 남겨 보기로 했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검붉은 연기와 함께 수천만 거인들이 진격한다.
수많은 생명을 짓이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거인들이 세상을 짓밟는 장면을 마주하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종말을 몰고 오는 거인은 누구인가"
인간 그 자체를 의미하는것은 아닐까? 지구의 숨결을 짓밟고, 문명이라는 명목으로 지구를, 자연을 소모한 인간.
기후변화, 자원 고갈, 생태계 붕괴…
우리는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별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 끝은 무엇인가. 땅은 메말라가며, 바다는 끓고, 빙하는 녹아내린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곳엔 균열이 생겨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종말로 이끈다.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의 그림자는 어느새 거인과 다를 바 없이 지구를 짓밟고 있다.
거인의 발자국은 어쩌면 우리의 발자국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결국 그 세상을 무너뜨려 온 존재.
극중에서 거인화가 가능한 유미르의 백성들은 악마로 불리운다.
다른 생명체에게 있어 인간은 악마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리고 결국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운명일까.
첫째, 스스로 씨를 말려 멸종에 이르거나—
둘째, 스스로 종말을 선택하며 사라지거나.
진격의 거인에서 에렌은 예언을 보았다. 스스로 종말을 맞이하는 결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인류의 종말과 함께, 찬란했던 문명은 산산조각 나는 미래를.
그러나 그 끝에 소수의 인간들은 살아 남았다. 그 존재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또 다른 시험일까.
우리는 왜 종말하지 않았는가. 씨가 마르지 않았는가. 왜 끝끝내 이 지구에 남겨졌는가.
자신을 포함한 다른 생명에게 악마로 불리며, 종말을 불러오는 존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재의 뜻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랑 때문일까. 서로를, 자연을, 생명을…
의문이든, 예언이든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확실한 건, 우리가 거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의 발걸음이 지구의 숨결을 짓밟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설령 종말이 온다 해도, 언제나 소수의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
인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끝에서 본능처럼 사랑을 택하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모든 존재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직 이곳에 남겨진 단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