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당신의 편지는 안녕하신가요?

- 20년 전 편지를 보며

by care
NciOiGQZV%2BK%2B8Il39Ugs%3D


지난 주 오랜만에 모인 가족모임에서 편지소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받았던 어떤 여자분의 편지를 어머니가 발견해서 보고 있었는데

제수씨가 들어와서 뭐냐고 해서 매우 당황해하며 치웠다는 이야기였다.

들어보니 군대 있을 당시 받았던 편지이고 펜팔? 이었다는 것 같았다.


여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편지박스가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내가 살던 집으로 가 책장 밑 구석에 먼지를 이불삼아 덮고 있는 박스를 흔들어 깨웠다.

박스를 열어보니 과거의 여러 사진들, 편지들, 누군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함께 보았던 영화표 등등

잔뜩 나왔다. 난..지나간 과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보니 버리지 않고 모으는 경향이 있는데

지난 편지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기억의 파편"들을 살펴보았다.


제일 오래된 편지는 이등병...그러니까 논산 훈련소 때 받았던 편지였다.

훈련소 있을 때 편지가 나만 안 와서 시무룩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편지봉투에 편지지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다른 사람에 비해 1주 정도 늦게 받았었다. 다들 엄청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편지를 받아보며 기뻤었고 모포를 뒤집어 쓰고 불빛이 나오는 볼펜으로 답장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이 편지의 작성인과는 일병 달기 전에 헤어졌는데 편지를 보니

그 당시 나의 빈 자리가 매우 컸었고 그 힘듦이 적혀있다는 것을

20년이 다 된 이 시점에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곰신 역할을 해주신 분의 편지. 너무나도 많은데 대충 보니 50통은 넘었다.

전지로 적어준 커다란 편지도 있는데 너무 커서 별도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이별 후 보내려다가 보내지 못한 나의 편지도 남아있었다.


또 다른 봉투에는 편지지는 아니지만 노트에 나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쓰고 뜯어서 준 편지였다.

보니까 좋은데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는 것이 보이는 느낌?


그리고 동생이 군대에서 써준 편지,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카드..등등

그동안 봤었던 영화표..놀러갔었던 입장권.

모두 작은 박스에 담겨져있었다.


결혼 전에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편지나 사진을

'버려야 한다'와 '아니다'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난 버리지 않는다는 쪽이다. 이 또한 나라는 사람의 기억이기 때문이라서다.


최근 여자친구와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여자친구 역시 받은 편지들이 있고 굳이 버려야 하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 버린다면 나도 보고 싶어."

(그녀는 내 흑역사를 파내는 것을 좋아한다.)


편지를 박스에 담고, 입장권을 담는 등의 수집을 하면서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감성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내 삶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니 여자친구에게는 편지를 써준 적이 없다.

이젠 한번 써야겠다.

마음을 담아서,

이제는 나의 반려자가 된 그녀에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17] "쉰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