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 한 달의 기록
퇴사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정확히는 한 달 하고 이틀째 되는 날.
숫자는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달 전, 별다른 준비가 없이 딱 두 달만 쉬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쉰다는 것 이렇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들었다.
처음 며칠은 정말 좋았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는 하루, 출근 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괜찮은 여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머릿속이 비워진 듯한 그 느낌이었다.
회사에 있을 땐 주말에도 자동으로 떠오르던 업무 생각이 이제는 사라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이게 진짜 쉼이구나.’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일이 바빠 자주 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자주 만나고 출근에 대한 부담없이 집에 데려다주는 일상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쉼이 주는 공허함도 함께 찾아왔다.
무기력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수동적인 사람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사 전, 어떤 계획도 없었다.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고, 그게 다일 줄 알았다.
그런데 쉬는 것도, 쉬어본 사람이 잘 쉰다더니.
몸은 쉬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이어졌다.
하루가 길게 늘어지고, 생각은 산만하게 흩어졌다.
생각이 이루어져도 실행이 안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수면패턴이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업무로 가득찼다가 비워진 머리는
밤이 되면 걱정과 불안이 스며들었다.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없어서 불안하고,
할 일이 있으면 많아서 불안한...(아버지도 비슷하시다.)
결국 잠은 잠대로 오지 않았고,
건강을 위해 시작한 양압기도 적응하지 못한 채 멈춰섰다.
무너진 수면은 나머지 하루 전체를 갉아먹었다.
수면이 불안정해지니 낮에도 무언가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회사 생활 할 때는 주어진 업무가 있고 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현 상황에서 주어진 것이 없으니 늘어지기만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생각 해낸 것이 To-do 리스트 만들기 였다.
처음엔 앱을 써보려 했지만 나와 맞는 것이 없었다.
지금은 스프레드시트에 체크박스를 만들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수동적이면 강제성을 부여하면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과 정리, 그리고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엄청 장기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올해 안에 내가 감당해야 할 과업에 맞게,
한 사람의 프로젝트로서 나를 기획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달을 돌아본다.
어찌 보면 무기력했고, 또 어찌 보면 낭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얻은 것으로
조금은 다행이라 믿고 싶다.
모든 변화는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여야 한다.
지금은 그 초입에 서 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 해당 글로 이미지 요청을 했는데 영문으로 그려진 4컷이 더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