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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Apr 28. 2023

승진을 선택하지 않은 교사

새로운 길

“선생님은 교사가 천직이네요.”

동료 교사가 나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한참 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교사가 천직이라니 무슨 뜻일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는 걸까. 아니면 내게서 교육에 대한 원대한 꿈이 보인다는 걸까. 나는 전자도 후자도 전혀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참 예민하고 또 민감한 사람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말 한마디를 수십 번이나 곱씹곤 한다. 누군가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온종일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 때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매일 동료 교사, 관리자, 학생, 학부모 등을 상대해야 하고, 그들과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교사란 직업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왜 교사로 사는 걸까.

한편 내가 정말 견디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수직적인 상하 관계이다. 군대에서 2년 동안 폭력적이고 수직적인 상하 관계를 경험한 이후로는, 딱딱한 조직 문화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상하 관계가 덜 한 직장이 어디일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떠올린 직업이 바로 교사였다.

물론 학교에도 관리자, 상급자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이고 그들을 제외하면 교사는 어떤 조직보다 수평적으로 지낼 수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바로 교대 입시를 준비했다.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교대에 신 입학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초등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사만 되면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교직에 입문하고 1년 남짓 시간이 흘렀을 때 큰 병을 얻었고 2년간 질병 휴직을 하게 되었다. 어렵사리 교직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는, 10년 후 20년 후의 삶을 꿈꾸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었다. 남들처럼 몸을 혹사하면서 치열하게 승진 준비할 여력도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기에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교직 생활을 버텨냈다.

승진의 꿈이 없었기에 학교에서 중책을 맡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학급을 담임하며 평범하게 교직 생활을 하는 것도 절대 쉽지 않았다. 매년 각기 다른 성격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감정을 받아내야 했다. 또한, 학생들의 학부모까지 생각해야 했다. 성장 과정,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인 학생과 학부모와 소통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동 학년이란 이름으로 매년 다른 선생님들과 협업을 하는 일도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였다. 물론 마음이 맞는 학생, 학부모, 동료, 상급자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땐 1년이 참 버거웠다.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상대하고, 그들과 대화를 할 때 될 수 있으면 갈등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될 수 있으면 내 주장을 강하게 펼치지 않았고, 의견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참을 때가 많았다.

하루하루 마음에 커다란 짐이 쌓여갈 때, 언제부턴가 스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에게 크고 작은 어려움을 모두 털어놓곤 했는데, 상대방을 위해서 더 이상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힘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 고통스러웠던 하루의 경험이 의미 있는 경험으로 되살아났다. 또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내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관계에서 미묘한 점들을 잘 읽어내는 내 예민함이 평소에는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글쓰기를 할 때 그러한 성향이 강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글을 써도 여전히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겼다. 관계가 벅찼지만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글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글을 모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내디딘 발자국들이 모이니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겼다. 월간지에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도 하게 되었고,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원격 연수원 담당자의 요청으로, 교사의 고민과 관련된 원격 연수도 준비하게 되었다.

그저 하루를 버텨내던 교사가 글쓰기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다. 평소에 존경하는 동료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꺼냈더니,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셨다.

“선생님이 걷는 길이 동료, 후배 교사들에게 새로운 길이 될 거예요.”

이분법적으로 교사에게는 두 가지 길만 있다고 생각했다. 승진을 통해 관리자가 되는 길과 승진을 포기하고 평교사로 살아가는 길 말이다. 승진이란 관점에서 보면, 승진을 선택하지 않은 교사는 왠지 낙오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승진하지 않아도 평교사로 새로운 꿈을 꾸면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새로운 길이 낯설고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부담감을 내려놓고 신나게, 즐겁게 이 길을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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