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작년에 6학년 8반이었던 영미예요. 다음 주 월요일에 미선이랑 같이 선생님을 뵈러 가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작년 우리 반이었던 영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스승의 날 전에 학교에 찾아오고 싶다는 영미에게,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영미야 잘 지냈지? 연락해 줘서 반갑고 고마워. 너희가 찾아온다니 선생님도 참 반갑고 좋다. 다음 주 월요일에 미선이랑 같이 와. 근데, 몇 시에 올 거야?”
“그날, 제가 다니는 중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아무 때나 가도 괜찮아요. 선생님 출근하시는 아침에 가도 될까요?”
“아침도 괜찮아. 그럼 8시 반 경에 우리 반 교실로 오렴.”
영미가 찾아온다니….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교사들끼리 재미 삼아하는 말 중에, 산소 같은 아이라는 말이 있다. 산소는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산소 같은 아이도 차분하고 조용해서 평소에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교실 안에서 꼭 필요한 아이였다.
산소 같은 아이, 영미는 바로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영미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평소 조용한 성격에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에, 용기를 내어 직접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도, 개교기념일에 일찍 일어나서 나를 찾아온다는 것도 놀라웠다.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을 때, 활달한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내게 다가와서 이런저런 말을 건네었다. 특별히 묻지 않아도, 어제 재밌었던 일, 친구와의 다툼, 부모님과 관계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잘 알 수 있었고, 그들과 친밀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영미는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지나가다가 가볍게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걸어도,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묵묵히 잘 지내는 영미를 비롯한 산소 같은 아이들이 항상 고마웠지만,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니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도 영미가 나와 우리 학교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줘서 감격스러웠다.
실은 나도 학창 시절에 산소 같은 아이였다. 담임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감히 선생님께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듣고,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선생님을 지지하고 또 존경했지만, 선생님의 관심은 소위 말하는 특출한 모범생 또는 말썽꾸러기 아이에게 있어 보였다.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싶었지만, 모범생이 될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억지로 사고를 칠 마음도 없었기에 교실 속에서 산소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낸 탓에, 교사가 된 후에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조용한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갔다. 특별한 대답이 없더라도, 조용한 아이들에게 지나가며 말이라도 한 번 걸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따금 씽긋 웃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내가 무심한 듯 건넸던 말들이, 영미에게 의미가 있어서 다행이다.’
담임교사도 교실 안에서는 나름의 영향력이 있기에, 학급 아이들에게 늘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진급을 하면, 이전 학급의 교사는 아이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또한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교 시절의 담임교사는 자연스럽게 더욱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졸업 후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더없이 고마웠다.
한 주 후 아침에 출근했더니, 영미와 미선이가 우리 반 교실 앞에 서 있었다.
“언제 왔어?”
“한 8시 10분쯤이요.”
“우와. 정말 일찍 왔다. 개교기념일인데 선생님 때문에 일찍 일어났겠네.”
“네. 그래도 괜찮아요.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영미와 미선이가 무심히 꽃다발과 과자 한 상자를 건넸다.
“선생님을 기억해 주고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너희 덕분에 선생님이 힘이 난다.”
영미와 미선이에게 내가 준비한 선물을 건네고, 함께 교실,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1년 사이에 학교가 많이 변했어요.”
“그렇지? 1년 사이에 아이들도 더 많아졌어, 새롭게 건물도 지었고.”
“올해 선생님 반 아이들은 어때요?”
“음, 아이들은 물론 착하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작년 너희들만은 못 해. 너희 같은 아이들은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
영미가 배시시 웃었다.
“너희를 보니 작년 생각이 많이 난다. 작년에 참 즐거웠는데… 그건 그렇고 중학교 생활은 힘들지 않아?”
1년 사이에 말수가 부쩍 는 영미와 미선이와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이제 수업하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그래. 정말 고마워. 참, 선생님이 작년부터 계속 글 쓰고 있다고 했잖아. 혹시 기억하니?”
“네 기억해요.”
“만약에 그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추천사를 부탁하고 싶은데… 너희의 응원을 받으면, 더 힘이 날 것 같거든.”
“네. 좋아요. 선생님 글,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침부터 졸업생이 찾아온 탓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교실에 돌아와서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조금 전에 선생님 찾아왔었던 언니, 누나 봤지?”
“네 봤어요.”
“너희도 내년에 졸업하고 나면, 스승의 날에 꼭 찾아와야 해!”
“그럼요. 당연히 오죠.”
“어이구. 작년에도 다들 그렇게 말했어, 그렇게 말하고는 다들 안 오더라. 너희는 꼭 약속 지켜야 해?”
아이들이 한바탕 웃으며, 기쁘게 화답했다. 교사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상할 때가 종종 있다. 스승의 날에 영미와 미선이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준 것 같아 기뻤다.
제자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은, 교사만의 특권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남은 교직 생활 동안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생각이다. 또한 지금처럼, 드러나지 않고 교실에서 제 역할을 하는 아이에게도, 말 한 번 더 거는 일도 멈추지 말아야겠다. 그런 행동들이 눈으로 드러나는 성과나 결과물은 없어 보이더라도 말이다. 영미와 미선이의 방문을 통해 내가 그들을 묵묵히 응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조용히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아이들 앞에 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