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교

공감해 주는 단 한 사람

by 괜찮아샘

“학교가 불타고 있다!”


학생들이 소리쳤다. 미술시간, 수채화를 그리던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A의 그림 속 우리 학교가 온통 빨갛게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불태울 생각을 해? 그만큼 학교가 싫고, 담임인 내가 싫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불타는 학교를 그린다는 게 말이 돼?’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친구들 앞에서 A를 혼 내려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물었다.


“학교가 불타고 있네? 학교가 싫니?”


내 물음에 A가 대답했다.


“네, 학교가 싫어요.”


“그래 학교가 싫을 수 있지. 학교가 싫다고 하니 선생님 마음이 아픈걸?”


A의 단호한 대답에 더 이상 얘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화를 참고 친구들 앞에서 면박을 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름 훌륭한 대처였다고 생각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얼마 전 읽었던 그림책이 번쩍 떠올랐다.



어느 날 찬이가 그네를 타러 공원으로 갔다.

“넌 못 타, 난 여기서 절대 안 내릴 거야.” 심통이가 말했다.

“괜찮아.” 찬이가 말했다.

가는 길에 찬이가 웅덩이에 빠졌다.

“괜찮아.” 찬이가 말했다.


<감정을 숨기는 찬이, 마곳 선더랜드>



어릴 적 나는 찬이와 비슷했다. 짜증 나고 속상해도 언제나 ‘괜찮아’ 하고 말했다. 딱 하나, 찬이와 다른 점이 있었다. 찬이는 참고 참다가 결국 “나 안 괜찮아!" 하며 자신의 감정을 분출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고, 기분이 나빠도 웃어야 되는 거구나!'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항상 웃고 다니라는 말로 이해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긴 했지만, 마음속엔 화가 불쑥불쑥 치밀었다. 슬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도' 항상 '웃으려니' 속이 쓰리고 아팠다.


그래서일까? '불타는 학교'를 그린 A의 솔직한 감정 표현이 나는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림이 쉽게 잊히지 않아서, 퇴근 후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A가 그림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는 A의 태도에 주목했지만, 아내는 A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주목했다. 아내의 말에 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A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공감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A가 낸 수수께끼에 엉뚱한 대답을 한 것 같아 머쓱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초등학생 시절, 내가 A처럼 행동했다면 주변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림을 통해 학교생활이 어렵다고 말하면, 귀담아 들어주고 공감해줄 선생님이 단 한 분이라도 있었을까?

애석하게도 없었을 것 같다. 오히려 버릇없다고 꾸지람을 듣지 않았을까?


'누군가 마음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참 슬펐겠다고, 마음이 정말 어려웠겠다고' 이 말이면 충분한데, 듣기가 참 어렵다. 주변에 공감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귀한 사람을 기다리며, 우리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요즘 학교에서 힘든 일 있니?"


내일은 학교에 가서 A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