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있다
“선생님, 짝 활동 안 하면 안 돼요?”
A가 수업 시간에 흐름을 끊으며 뾰족하게 말했다. A는 짝과 의견을 주고받는 간단한 활동마저 거부하며, 자주 내 마음을 긁어 놓았다.
학기 초, 쉬는 시간에 A에게 다가온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A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난 너희들이랑 놀기 싫어.”
섬뜩한 A의 이야기에 친구들도,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얼어붙곤 했다. A가 날카로운 말투로 친구들의 단점을 콕콕 집을 때도 있었다.
“너는 왜 그리 키가 작아?”
“네 눈은 짝짝이야?”
“너 진짜 뚱뚱하다.”
다들 A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내가 A에게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 없었다. 어느 날, 다른 학년의 B 선생님이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나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 내일 반에서 심폐 소생술 교육하시죠? 교육 전에 미리 아셔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무슨 급한 일이 길래 우리 교실까지 직접 찾아온 걸까?’
나는 이유를 가늠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B선생님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에 A의 아버지가 집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대요. A와 동생이 학교에서 배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돌아가시고 말았죠."
순간 내 머릿속에 심폐소생술을 하는 A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작은 손으로 아버지를 살려보겠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생각하자, 안타까움을 넘어서 진한 연민이 생겼다.
"그러니 심폐소생술을 할 때, A가 예민하게 반응하더라도 이해하세요. 작년에 제가 A의 사정을 모른 채, 심폐소생술을 제대로만 하면 위험한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A가 크게 화를 내서 깜짝 놀랐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누구를 만나 어떤 인간적 자극을 받고 살아왔는지, 어떤 체험과 각성을 통해 자신을 부단히 재탄생 시키며 살아왔는지를 편견 없이 알아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일입니다.
-유영만,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나무생각
과거에 A에게 있었던 일들을 듣고 나니,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A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심폐 소생술을 열심히 했음에도,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던 A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버지의 숨이 멎어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본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또 쓸모없는 심폐 소생술을 가르쳐준 학교와 선생님을 향한 분노는 얼마나 컸을까? 그동안 A가 나와 친구들에게 보인 적대적인 태도 이면에는 큰 아픔이 있었으리라.'
A의 아픔이 느껴져서 마음이 시렸다. 이렇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A의 아픔을 덜어주고 싶어 조심스레 말을 건네곤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뾰족하고 모진 말들이 되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어떻게 하면 A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A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에도 A의 과거의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지만, 도통 A가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안타까움만 남긴 채 한 해가 지나갔다. 진급을 한 이후에도 가끔씩 복도에서 A와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이제 시간이 훌쩍 지나 A를 더이상 볼 수 없지만, 종종 생각이 난다.
‘왜 그때 A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걸까?’
누군가 물에 빠졌다면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하지만,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는 것처럼 문제 상황에서 함께 허우적거리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제대로 돕기 위해선 건강한 경계를 세우며 나를 지키는 일이 필요하고, 자신의 몫과 상대의 몫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김수현,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다산북스
김수현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마음이 정리가 되면서, 몇 가지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도움을 주는 건 일방적인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A가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는데, 내가 다가가는 건 도움이 아니라 간섭일 뿐이다.
둘째, 상담자가 지나치게 감정에 매몰되면 안된다. 물론 공감이 중요하긴 하지만, 퇴근 후 집에서까지 우울한 감정을 느끼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회복을 위한 적당한 타이밍이 있다. 내가 담임을 할 때, A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오만한 것이었다. A가 회복할 타이밍은 내가 임의로 정할 수 없다. A가 적절한 타이밍을 만나 제대로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해줄 뿐이다.
지금쯤 A는 아픔을 극복했을까? 자유로워질 타이밍이 A에게 선물처럼 나타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