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주말에, 차로 천천히 동네를 지났다. 그때, 근처 놀이터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반 아이들과 옆 반 아이들이었다.
한쪽 구석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해맑은 모습으로 천진난만하게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밥은 먹고 노는 건가? 간단한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놀면 좋을 텐데.’
평소에 교실에서 작은 사탕 하나에도 열광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느라 배고플 텐데. 간식이라도 사주고 가자.’
그 길로 근처 마트로 가서, 아이들에게 줄 간단한 요깃거리를 골랐다.
‘아이들이 간식을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간식을 받아 들고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덩달아 신났다.
'그런데 혹시 내가 마트에서 간식을 사는 동안 아이들이 각자 집으로 갔으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며 급히 발걸음을 놀이터로 향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얘들아, 이거 먹으면서 놀아.”
내가 아이들 앞에 간식거리를 내려놓았다. 아이들의 반응을 예상해 보았다. 환호성을 지르거나 "선생님 최고"를 연신 외쳐대지 않을까? 아이들의 실제 반응은 어땠을까?
기대하며 천천히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이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마냥 기뻐할 것만 같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이내 아이들이 하나 둘 다가오더니, 간식만 받아 들고는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이 그렇게 아이들이 모두 떠났다.
결국 놀이터에 남은 건 나와 빈 과자 상자뿐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짠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간식을 사간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차가워서 속상했다.
‘그냥 못 본 척 지나갈 걸 괜히 오지랖을 떨었나? 아무리 그래도 휴일에 담임 선생님이 직접 간식까지 사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다니...’
집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서운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아이들은 학교에서처럼 내 간식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얼마 전 학교에서 A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A 선생님은 당시 교감 승진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내가 A 선생님께 물었다.
“교감으로 발령을 받아서 새로운 학교에 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음... 저는 교감이 되면, 밥을 많이 사고 싶어요. 그래서 새로운 학교에 가면 먼저 선생님 한 분 한 분과 개인적으로 약속을 잡을 생각이에요. 한 분도 빠짐없이 퇴근 후에 개인적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거든요.”
A 선생님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자신이 교감이 되어 교사들에게 개인적으로 밥을 사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교감이 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텐데, 굳이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 이유가 궁금했다.
"선생님, 그런데 왜 모든 선생님들께 개인적으로 밥을 사고 싶으신 거예요?"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교장, 교감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퇴근 후에 밥을 자주 먹었었거든요. 밥을 먹으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니 유대감도 생기고 좋았어요. 물론, 교감 교장 선생님이 계산까지 하셔서 더 좋았던 거겠죠."
A 선생님이 껄껄껄 웃으며 기분 좋게 답을 했다. 자신의 과거 좋은 기억 때문에, 관리자가 된 후에 교사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후배 교사를 위해 시간을 내고 또 돈을 써가며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A 선생님의 생각이 멋지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될수록 내 마음이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A 선생님은 퇴근 후 관리자와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낸 일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생각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해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퇴근 후에 교감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식사를 하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그 자리가 어렵고 불편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자신이 과거에 좋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좋아하는 것은 아닐 텐데... '
A 선생님께 이런 마음을 전하려다가 관뒀다. 잔뜩 들뜬 A 선생님의 기분을 망쳐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 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이렇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는 근무 시간은 공적인 시간이고, 퇴근 후 시간은 사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사적인 시간에 공적인 사람과 만남을 갖는 것이 모두에게 마냥 즐거운 일일까요? 교감 선생님과 단 둘이 하는 식사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리가 즐거운 자리겠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곤욕스러운 자리가 될 거예요. 모든 선생님들과의 개인적인 식사 자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개인적으로 A 선생님이 싫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상급자의 선의가 때로는 하급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A 선생님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호의를 베푸려 한 사람은 비단 A 선생님뿐일까? 순간 A 선생님이 식사를 대접하려는 일과, 놀이터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준 일이 비슷한 맥락인 것을 깨달았다. 왜 퇴근 후에 상급자가 일방적으로 밥을 사는 것은 불편하게 느끼면서, 휴일에 담임교사가 아이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 간식을 건네는 일은 불편하게 여기지 못했을까?
교사라고 아무 때나 아이들의 삶에 불쑥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들의 사적인 시간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아이들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입장에선 선의였을지 몰라도, 재밌게 친구들과 노는데 갑작스럽게 담임 선생님이 나타났으니 아이들 입장에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누군가가 원할 때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음에도 무언가를 하는 것은 간섭이 될 수도 있음을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닐까?
'먼발치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이기주, <언어의 온도>, 말글터
이기주 작가의 말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상대가 어른이든 아이든 동일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