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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l 20. 2021

아버지의 운동복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생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따져 보면 이 땅의 아버지들은 지난 사오십 년의 세월 동안 넘어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꿋꿋하게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한 게다." - 우종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앙 M&B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버지가 생각났다. 작가와 우리 아버지는 참 많이 닮았다. 30년 이상 나무와 관련된 일을 하신 것, 나무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 전자기기 사용을 어려워하신다는 것까지. 아버지는 전자기기 때문에 애를 먹으면서도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셨다. 답답해진 내가 도와주려 할 때마다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섭섭했던 적도 많았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서글픈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직장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직장 생활을 해보니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너무 많고, 그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매일 얼마나 곤욕스러웠을까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공무원 정년을 몇 년 앞둔 어느 날, 아버지는 30년 넘게 일하시던 녹지, 공원관리 일을 덜컥 그만두셨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분명 아버지만의 지식, 경험, 지혜가 따로 있을 텐데, 이를 더 이상 활용하거나 나눠주지 못한다니, 좀 속상한 일이다.


 아버지는 늘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분이셨다. 매달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셨고, 봉사 단체나 종교 단체에 후원도 열심히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본인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셨다.


 바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옷이나 신발을 사 왔을 때였다. 본인 물건을 사지 않던 아버지는 거의 늘 같은 옷을 입었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물건을 사 오곤 했다. 그럼 아버지는 대뜸 화부터 내셨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 비싸게 사 왔다’ 등 다양한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본인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사 오는 것 자체가 싫으셨던 것 같다.


 남을 위해 10만 원을 후원하는 것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지만, 본인을 위해 5천 원짜리 옷 한 벌 사는 것은 싫어하는 아버지를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처럼 아버지 스스로에게도 호의를 베풀라고 거듭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지 어릴 때 소원이 뭔지 아니? 자신을 위해 운동복 한 벌 사는 거였대.”


 어머니께서 내게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생계가 어려웠지만,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해 교사를 꿈꾸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구청 공무원이 되었다. 그 후, 실질적인 가장이 된 아버지는 여덟 식구를 먹여 살렸다. 생계 걱정을 늘 하시던 할머니와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버지 본인을 위해 무언가 사는 것은 사치였고 죄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몸에 밴, 타인을 위한 희생과 배려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막상 아버지가 되고 보니, 우리 아버지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흔이 다 되어 가장의 책임감을 느낀 나에 비해 아버지의 삶은 훨씬 고되고 외로웠을 것 같다.


 때때로 우리는 남을 쉽게 판단하고, 또 상대방을 쉽게 바꾸려고 한다. 우리가 쉽게 상대방을 판단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상대방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상처와 아픔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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