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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l 13. 2021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으앙~~”


 새벽 2시가 되자 사랑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울음은 6시까지 드문드문 이어졌다. 나와 아내는 짜증을 내다 결국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새벽 5시경 일어나는 사랑이 때문에 우리는 전날 최소 12시 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어제는 12시를 훌쩍 넘겨 잠자리에 들었고, 사랑이는 오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수면시간도 부족한데 사랑이 울음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한숨도 못 잔 것처럼 피곤해지고 말았다.

 

 "쨍그랑~”


 부엌에서 들린 소리였다. 분유를 타다가 아내가 유리 포트를 깨뜨린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전자레인지에선 계란찜 물이 흘러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예상치 않은 일들까지 생기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화가 나서, 문득 어제저녁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일찍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평화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삶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어젯밤뿐일까? 내가 큰 병을 앓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까?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던 그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나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노랗게 변한 하늘이 매일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영양제 수액을 맞으면 몸이 좀 회복될까 싶어서 근처 병원을 찾았다.


 “혈액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 골수 검사를 해 봐야 정확하겠지만, 큰 병이 의심되니 부모님께 바로 연락을 드리세요.”


 영양제를 맞으러 병원에 찾아갔던 그날, 나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무균 병동이 있는 3차 병원으로 이송된 후, 1년간 항암 치료를 받았다. 마음의 준비는 물론, 가족들, 지인들과 슬픔을 나눌 겨를도 없이 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1차 항암 치료의 예후가 좋아서 골수 이식까지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3번에 걸친 항암 치료는 너무나 끔찍했고 고통스러웠다. 독한 항암제를 맞을 때면 속이 메슥거렸다. 나는 특히 냄새에 민감해서, 밥 냄새만 맡아도 구토를 할 것 같았다. 밥시간이 되면 냄새 때문에 피신을 갔고, 그나마 냄새가 나지 않는 과일로 허기를 달랬다. 밥 냄새조차 맡지 못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민둥 머리로 병실에 누워있는 것도 슬펐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가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다시 아프면 어떡하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어느 질문에도 스스로 답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더는 걱정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들로 내 머릿속을 채우면,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프고 괴롭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삶을 살아내야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몸도 마음도 완전히 회복된 줄 알았는데, 이따금 그날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아직은 마음이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마음속 깊이 슬픔과 두려움을 감춰놓고 괜찮은 척한다고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에게 내 상황과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려 노력한다.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아픔들과 어려움들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슬픔을 외면하고 억압하기만 하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픔을 털어놓고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온전한 회복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내 아픔을 드러내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로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게 두 번째 삶을 허락하신 분의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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