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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Jun 11. 2021

터닝포인트

다시 꾸는 꿈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꿈꾸지 않으면, 간디학교 교가


 꿈이 없었다. 마지못해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았다. 수능 점수에 맞춰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전공은 생소했던 환경 화학공학이었다. 전공 수업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학점 역시 잘 나올 리 없었다. 그래도 졸업장은 따야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2년 간 대학 생활을 힘겹게 마친 후 학교에서 도망치듯 서둘러 입대를 했다.


 군대에서의 삶 역시 녹녹지가 않았다. 낯선 단체 생활과 힘든 훈련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몸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관계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입대 전까지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큰 어려움이 없이 관계를 맺고 살았다.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 선택적으로 교제를 했기 때문이. 군대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피할 수 없었다. 선임과 후임이라는 계급, 같은 내무실이라는 공간, 2년이라는 시간 등으로 그들과 완전히 묶여버렸다.


 사회에 있었다면 나랑은 맞지 않다고 이내 피해버렸을 사람들이었다. 주어진 모든 시간들을 그들과 함께 지내야 했기에 고통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작은 일까지 온통 트집을 잡고 매사에 모멸감을 주는 일부 선임병들의 행동은 정말 참기가 어려웠다. 수직적인 군대 문화는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였다.


 ‘나는 정말 인간쓰레기인가?’


 그들의 말을 빗대면 나는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인간쓰레기였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욕설과 비아냥을 선임병이 되기 전까지 머리에 박히도록 듣고 또 들었다.


 힘겨웠던 군 생활 중에도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바로 새벽에 위병소(부대의 정문) 근무를 하는 시간이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깊은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별을 보며 홀로 서서 마음속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마음이 잘 맞는 후임인 A와 근무를 서는 날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A는 수도권의 모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직 초등교사로 근무하다가 온 후임이었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온 그의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았지만,

그는 나보다 군대에 1년 늦게 들어온 한 명의 후임일 뿐이었다.


“야 초등학교에서 선생 하던 이야기 좀 해봐.”


 내가 그에게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그에게 묻고는 했지만,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릴 적엔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지만, 초라한 성적 때문에 그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었다. 그를 통해 어릴 적 동경했던 초등교사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는 초등 교사로서 큰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는 어리바리한 병사였지만, 학교 이야기를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신기했다. 사실 그의 학교 이야기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것뿐이었다. 그의 과거 경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부분 보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입대한 천덕꾸러기 늦깎이 군인이었다. 군생활과 비교했을 때, 그에게 과거의 학교 생활은 꿈같이 행복했던 추억이었으리라. 아름답게 보정되어버린 그의 학교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제대하고 뭐하지?’


 힘겨웠던 군생활을 마무리할 때쯤 밤마다 깊은 고민을 했다. 제대를 하면 나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당시 대학교를 2학년까지 마쳤기 때문에 3학년으로 복학하면 됐다. 그러나 대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군대에 남아있는 것만큼이나 싫었다. 환경 화학공학이라는 전공에 전혀 흥미가 없었고, 졸업 후에 취업을 하면 다시 수직적인 직장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전역이라는 꿈을 위해서 달려왔건만, 정작 전역을 앞두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A가 행복하게 이야기했던 초등교사의 삶을 나도 살아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매일 괴로웠던 2년간의 군 생활도 악으로 버텨왔는데, 무슨 일을 하든 그보다는 쉬울 것만 같았다. 러한 마음가짐은 힘겨웠던 군 생활이 나에게 준 단 하나의 선물이었다. 나는 전역을 코앞에 두고 병장 정기 휴가를 나와서, 대학 입시 전문 재수 학원으로 달려갔다. 교대 진학을 위해 다시 입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삶에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순간이 있다. 역설적으로 그 순간은 보통 삶에서 가장 힘들 때 나타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공 공부, 끔찍한 직장 상사, 갑질을 일삼는 고객들, 일상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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