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제도 개편을 바라며
수능시험과 교육과정 재구성
“혼자서만 반을 서머힐 학교처럼 운영하면 되겠습니까?”
서머힐 학교는 진보적 교육자인 닐이 설립한 비형식적인 사립학교이다. 아이들의 자발적 활동을 중시하고, 교사가 명령 지시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학교의 모습과는 다르다.
몇 년 전, 교직원 회의 시간에 관리자인 A가 말했다. 그가 서머힐 학교를 거론해서 당황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동료 교사인 B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 같았다. B 선생님은 학교 안에서도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B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학기 말, 학교에서 학습 발표회가 있었다. 학습 발표회의 취지는 1년 동안 학급에서 배운 내용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학부모님을 비롯해서 보는 눈이 많았다. 대부분 평소 수업과는 관계없는, 잘 짜인 공연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 옷도 공연 복장으로 맞춰 입히고, 멋진 소품도 갖추었다. 다른 반과 비교해서 특별히 부족하지도 않으면서도, 유별나게 튀지도 않는 공연들이 이어졌다. B 선생님 반만 빼고 말이다.
“이 일은 이, 이 이 사, 이 삼은 육...”
갑자기 B 선생님 반 아이들이 강당 중간으로 나왔다. 구구단 노래를 부르면서 사방치기를 했다. 체육, 음악, 수학 교과를 연계한 수업 모습이었다. 교육과정 재구성에 관심이 많은 B 선생님 다웠다. 남의 이목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B 선생님의 모습을 아는 탓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은 평소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잘 짜인 공연이라기보다는 수업 시간에 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 공연을 보면서 학교 관리자들과 학부모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공연 이후, 교직원 회의 시간에 관리자 A가 말했다.
“혼자서만 자신의 반을 서머힐 학교처럼 운영하면 되겠습니까? 적어도 다른 반이랑 비슷하게는 해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A의 모습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 공연을 지켜본 학부모님이 민원을 제기했던 것 같았다. B 선생님의 반은 평소에도 교과서 없이 수업을 하는 탓에 민원이 많았다. B 선생님 반 학부모님들은 교육과정 재구성이란 말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학습발표회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B 교사에 대한 불신이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
교육부에서는 교육과정에 기초해서 담임교사가 수업을 재구성하라고 이야기한다. 각 반의 특성에 맞게 수업을 창의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관리자는 튀지 말고 다른 반과 비슷한 수업을 하라고 말했다. 교육부와 관리자의 상반된 입장 속에서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학기 초, 교육과정 재구성 연수를 들었다. 연수 강사로 온 선생님은 기존처럼 하나의 답만을 찾는 수업 방식은 4차 산업 시대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수업 방식으로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정한 교육 과정이란 큰 틀 안에서, 교과서 그대로 가르치지 말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가르치라고 주장했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면, 기존에 있는 교과서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학생 · 학급의 상황에 맞게 여러 과목을 융합하고 하나의 수업으로 녹여내기 때문에 기존의 교과서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 교육 방식에 익숙한 학부모님들은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낯설게 느낀다. 학기 말, 아이들이 빈칸 가득한 교과서를 집으로 가져오면 당황한다.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습 공백이 발생했다고 항의도 한다.
“선생님은 수학 단원 평가 안 해주시나요? 작년 담임 선생님은 해주셨는데...”
몇 년 전 학부모 상담 시간에 학부모님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아 그런가요? 참고하겠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수업이나 평가 방식은 담임의 고유 권한인데 침해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그 말이 이해가 갔다. 기존의 답 맞추기 수업, 평가 방식을 바라는 분이 어찌 그 학부모님 한 분뿐이겠는가?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또 좋은 직장에 취업시키기 위해 명문 대학에 보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명문 대학에 진학하려면 ‘수능 시험’을 잘 봐야 한다. 즉, 부모는 수능 시험을 생각하며 어릴 적부터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수능은 5개의 보기 중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는 방식의 시험이다.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그 방식에 맞추어 공부를 한다. 수능이란 평가 제도가 유지되는 한 교육과정 재구성, 창의적 수업, 다양한 과목을 융합한 수업 등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어 버린다. 문제를 빠른 시간에 정확하게 푸는 능력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입 평가 제도의 개선 없이는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의 답을 찾는 방식의 수업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대입 제도는 손보지 않고 ‘교육과정 재구성’만 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게 가능할까? 교육부가 명확하게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수능 시험을 유지하면서 수업 방식을 일제식 수업으로 하든지, 대입 제도를 개편한 후에 창의적인 수업을 하든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능 시험과 교육과정 재구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애매한 상태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까지 어떻게 해야 할까? 둘 사이를 적절하게 오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창의적인 수업을 추구하면서도, 답 맞히기 방식의 수업도 놓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대입 제도 및 평가 방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력도 해야 할 것 같다. '좋은교사운동' 같은 교사 단체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교육의봄'과 같은 시민 단체에서 꾸준히 그 일을 해나가고 있다. 그들을 응원하며 힘을 실어주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다. 당장에 필요한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오랫동안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교육은 백년대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 정책만은 일희일비하며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