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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Nov 29. 2021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적절한 말 한마디의 힘

우리 반 A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교실로 들어왔다.


"A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선생님... B가 많이 다쳤어요."


B가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교실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B의 오른쪽 눈이 퉁퉁 붓고 상처가 나 있었다. 쓰고 있던 안경도 흠집이 생겨서 쓸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A가 말했다.


"제가 장난으로 B의 두 손을 잡고 있었어요. 손을 등 뒤로 한 다음 힘껏 잡아당겼는데... B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안경과 눈이 바닥에 부딪쳤어요."


급하게 응급처치를 하고, B 어머니께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렸다. 아이를 잘 살피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드렸다. 전화를 끊고 교실로 들어오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학년 말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데... 내가 긴장을 너무 놓았나?'


학기 말이 되면 아이들도 나도 긴장이 풀린다. 연말이 되고 졸업식도 다가오니 아이들의 마음도 들떠있다. 학생들 간에 친해져서 장난도 평소보다 더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종종 사고가 발생한다.


B 어머니와 통화 후에 교실로 들어왔다. 다친 B도 걱정이 되었지만, A도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친구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급히 A를 찾았다. A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A는 교실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혼자 큐브를 맞추고 있었다. 내가 다친 A를 응급 처치하고, 전화로 A의 어머니께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던 그 순간에도 큐브를 맞추며 편안하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B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심하게 장난을 쳐서 B가 많이 다친 거잖아! B에게 미안하다고는 했니? 네가 지금 한가하게 큐브 맞추기나 할 때야? 상황 파악이 안 되니?"


A가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A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아까 전에 A에게 불같이 화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용히 A를 불렀다.


"네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건 잘 알아. 장난치다 보면 서로 다칠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네 잘못으로 친구가 다쳤으니, 미안한 마음도 표현하고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


A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갔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도 한동안 멍했다. 다친 B도, B의 어머니 반응도 걱정이 되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A의 어머니께도 전화를 드려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을 드려야 할까?'


사실, A의 어머니가 직접 B의 어머니께 전화를 해주기를 바랐다. 직접 죄송하다는 한 마디만 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가 한 학생이 다쳤다. 피해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체되고, 그 말을 해야 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못 듣고 서운함이 쌓이자, 문제가 갑자기 커져 버렸다. 또 그런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때, 내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A의 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오늘 저희 아이가 친구를 다치게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방금 전에 다친 B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 아이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휴..... 이제 끝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기를 내 직접 전화를  A의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A 어머니께 바로 전화를 걸었다. A 어머니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A 어머니도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A의 어머니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A 어머니의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B가 다쳐서 많이 놀랐나 봐요. B가 다친 후에, 저희 아이가 혼자 큐브 맞추기를 했다죠? 그건 당황이 되어서 마음을 추스르려고 한 거예요. 저희 아이는 평소에도 말로 표현을 잘 못하거든요. 저희 아이가 혼자서 큐브 맞추기를 하거나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면 당황했다는 표시예요. 그러니까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렇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생각지 않은 학부모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랬군요.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참고하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으려 통화를 한 건데, 나를 원망하는 말을 들을 줄이야...'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이 되었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가 친구를 다치게 했으면, 담임교사에게도 미안하단 말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자신의 자녀가 친구들 앞에서 꾸중을 들었으니 속상할 수 있다. 그러나 담임교사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대뜸 화부터 내는 A 어머니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A 어머니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통화를 마무리한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다친 친구를 앞에 두고, 무표정하게 큐브를 하고 있는 A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학부모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화가 났던 것은, 내가 사고를 수습하려고 애쓰고 노력한 것을 A 어머니가 몰라준다는 것이었다. 온종일 양쪽 아이와 학부모님께 마음을 썼는데... 내 노력이 원망 섞인 말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다친 학생의 어머니가 그 한 마디를 바랐던 것처럼, 담임교사인 나도 그 한마디를 바랐던 것인데...'


적재적소에 맞는 말 한마디가 있다. 때로는 그 한 마디를 제때 하지 못해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A는 친구인 B에게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말없이 혼자서 큐브 놀이만 했다. 또, A의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가 잘못한 상황에서 담임교사에게 미안함을 전하지 않은 채 항의를 했다. A가 자신의 감정 표현에 미숙했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도 감정 표현에 미숙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A를 지도하는 담임교사지, A의 어머니를 지도하는 담임교사는 아니잖아.'


억울한 마음을 뒤로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 역할에 충실했으면 그걸로 된 거야.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을 애쓰면서 잘 수습했어. 그래도 B가 많이 다치지 않았고, 일도 잘 저리 되었잖아?"


'천 냥 빚도 말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해결되는 일들이 많다. 그 한마디를 제때 하지 못하면 작은 문제가 큰 문제가 되어 버린다. 우리는 그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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