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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Nov 20. 2021

병설 유치원 급식 문제

다수의 주장이 항상 옳을까?

얼마 전 뉴스에 ‘병설 유치원 급식 문제’가 나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병설 유치원이 있는 학교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그리고 교직원까지 함께 급식을 먹는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같은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은 급식이 매워서 먹지 못할 때가 많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유아나 아동에게 매움을 참도록 하는 것은 폭력적인 행위라고 했다. 그들은 매운 급식이 인권침해라며 교육부를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이 기사에 사람들이 많은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집에서 도시락을 싸줘라.”

“여럿이 같이 먹는 건데. 참고 먹으면 되는 거지, 불만이 많아.”

“병설 유치원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립 유치원이나 단설 유치원으로 보내.”

“좀 덜 맵게 해달라고 학교에 말하지. 인권위에 진정까지 하다니...”

“100명도 안 되는 애들을 배려한다고, 1000명의 학생에게 피해를 감수하라고 하는 거야?”

“급식실 업무가 안 그래도 많은데, 일만 더 늘어나게 생겼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수인 초등학생을 위해 소수인 유치원생들이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를 위해서 소수는 무조건 희생을 해야 하는 걸까?


병설 유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공립 유치원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 안에 유치원이 함께 갖춰져 있어서 초등학교와 같은 건물을 사용한다. 건물과 시설을 같이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그중 한 가지가 위에서 언급한 급식 문제이다.


학생 규모 면에서 병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학교만 해도 초등학생 수는 1046명이고, 병설 유치원 유치원생 수는 59명이다. 학생 수에서만  17배 정도 차이가 난다.


병설 유치원이 있는 초등학교는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초등학생 위주로 학교가 운영된다. 그래서 초등학생 위주로 짜인 식단에 유치원생도 함께 급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 기사를 볼 땐, ‘정치하는 엄마들’이 이 문제를 인권위에 진정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했다. 병설 유치원 교직원이나 학부모가 학교 측과 협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별적으로 학교에 유치원 원아들을 위한 식단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쉬울까? 한 학교에서 ‘유치원용, 초등 저학년용, 초등 고학년용’ 등으로 식단을 다양하게 구성한다면, 영양 교사, 조리사, 조리 종사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부 차원에서 제도화하지 않는다면, 병설 유치원에서 유치원생에게 맞는 급식을 따로 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교육부 인권위 진정이라는 강한 카드를 꺼내 든 이유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 문제는 교육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병설 유치원 식단을 따로 짜도록 법제화하고, 학교에 근무하는 조리 종사원 수를 늘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다수를 위해서라면 소수가 항상 피해를 봐야 할까? 초등학생도 좋고, 유치원생도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 아닐까?


적어도 학교 현장에서는 효율성만 따지지 말고, 소수도 존중했으면 좋겠다. 또 제도적으로도 그렇게 뒷받침되기를 바란다.


어떤 초등학교에 장애가 있어서 거동이 불편한 학생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다른 학생들 모두 계단을 잘 이용하고 있으니까, 그 학생에게도 계단에 잘 적응해 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학생을 생각하며 모든 학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이르자 다수결을 맹신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학급 내에서 무엇인가 결정을 해야 할 때 종종 다수결을 활용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다수결로 결정하면,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의견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에, 비난을 걱정하지 않고 한 가지 주장을 밀어 부칠 수 있었다.


때로는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보다 더 바람직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나는 소수가 선택한 의견보다는, 다수가 고른 의견을 선택했다. 소수의 의견을 선택해서, 다수의 학생들에게 비난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수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에요. 다수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해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사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학급 안에서 담임교사는 1년 동안 다수의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 전체를 바라보느라 한 아이를 놓칠 때가 있다. 교실에서 잘 살펴보면 쉬는 시간에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 때도 교실 구석에서 소외되어 있는 아이가 있다. 또 아침부터 하교할 때까지 표정이 한결같이 굳어있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즐겁게 지내는 다수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수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외된 한 명의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담임의 역할이 아닐까? 다수결에서 다수의 의견을 중시하면서도, 의미 있는 소수의 의견을 놓치지 말아야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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