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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Dec 09. 2021

친절한 선생님? 단호한 선생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몇 해 전, 3월 어느 날이었다. 우리 반 교실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우리 반 교실로 들어갔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아침 활동 시간에 조용히 책 읽으라고 했어, 안 했어?"


교탁을 쾅 치며, 한마디 보탰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말하니까 우습게 보이니?"


아이들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론 아이들이 소란스럽긴 했지만, 이 정도로 화를 낼 일인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웃으며 수습할까 하다가, 애써 아이들의 얼굴을 외면했다.  이전 해처럼 지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학급 상황에서 교사는 학생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방어 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교사는 신비화, 단순화, 생략 등을 통해 방어적인 수업을 한다. '방어'. 교육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실제 수업과 생활지도에서 아이들과 팽팽하게 맞닿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다.'

- <이다정, 예술 교육에 스며들다, 교육과 실천>


이다정 선생님의 말처럼 난 아이들 앞에서 '방어'를 하고 있었다. 발령 첫 해, 작은 학교에서 5명의 반 아이들을 가르쳤다. 몇 년 후, 전교생이 1000명이 넘는 학교로 전근을 왔다. 우리 반 아이들은 30여 명이나 되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수시로 떠드는 통에 시장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수업 시간에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내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버거웠다.


모두가 행복한 우리 반을 만들고 싶었다. 아니 수업 시간만이라도 반 분위기가 차분하기를 바랐다. 내 바람과 달리 우리 반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그 후로 힘겹게 아이들과 한 해를 보냈다. 학기말에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니까,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본 건 아닐까? 다음 해에는 무서운 교사가 되야겠어...'


고민 끝에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학기초에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초반에 무서운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급 분위기도 잘 잡히고, 아이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지속적으로 엄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이들의 굳은 얼굴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이전에 하던 방식으로 부드럽게 아이들을 대했다. 다시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후, 1년이란 시간이 다시 흘렀다. 12월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동안 우리 반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볼까요?"


아이들이 각자 그림을 그리고, 칠판 앞에 붙였다. 문득 내 시선을 붙잡는 그림이 하나 보였다. 커다란 사람이 잔뜩 인상을 쓰고 서있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 설명해 줄 수 있나요?"


A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괜찮아요.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얘기해 주세요."


"개학하고 일주일 지났을 때예요. 아침 활동 시간에 책을 보고 있었는데요. 선생님이 갑자기 들어와서, 책을 읽지 않는다면서 잔뜩 화를 내셨어요.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무서워서 그날이 잊히지 않아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1년 동안 학급 안에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내가 버럭 화를 낸 모습만 기억하고 있구나.'


화만 잔뜩 낸 교사로 아이들 머릿속에 기억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그날 내가 화를 낸 후로 교실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교실 분위기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닌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기분이 들어서 속상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뾰족한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옆반 동료 교사에게 이런 상황을 털어놓았다. 내게 도움이 될 거라며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다.


'여기 두 교사의 독백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교사에 가깝습니까?

친절하게 대하다가 상처 받은 적이 있나요?

단호하게 대하다가 외로웠던 적이 있나요?

친절하게 대하는데도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단호하게 대하는데도 아이들과 친밀할 수 있을까요?'


-<제인 넬슨 외 2인, 학급 긍정 훈육법, 에듀니티>


저자가 나에게 직접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예의 바른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다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내 질문에 답하듯, 저자는 교실에서 학급 긍정 훈육법을 적용해 볼 것을 권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책의 내용처럼 명확한 규칙을 세우고 아이들 앞에서 말과 행동으로 일관성을 보였다.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아도 질서가 잡혔다. 아이들도 교실을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도, 반 분위기도 잡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책 한 권으로 학급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힘을 줄 때가 있다.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소에 갖고 있는 고민과 맞닿아 있는 한 마디의 말과 글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급 긍정 훈육법>을 읽지 않았더라도, 경력이 쌓여가면서 자연적으로 해결 방법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임교사로 적응하는데 지금보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 권의 책을 제때 만났기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던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외롭게 산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정작 내 어려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도, 에너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고민과 맞닿아 있는 한 권의 책을 만날 수 있기 바란다. 누구도 관심 없는 내 고민과 어려움에 공감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한 권의 책을 말이다. 책은 우리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 다만  책을 만날 준비가 안된 건 바로 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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