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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샘 Dec 21. 2021

계획대로만 살 수 있을까

매 년 반복되는 고민

"여보, 요즘 무슨 고민 있어요?"


아내가 내게 물었다.


"내년에 몇 학년 담임을 맡아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요."


"당신, 매년 이맘때 똑같은 고민하는 것 알아요?"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12월 말이 되면, 아내 말처럼 매번 비슷한 고민을 했다. 아내의 말을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난 떠는 건가? 어떤 학년을 맡게 되든지, 적응해서 즐겁게 지내면 될 텐데...'


그러다 문득 내가 더 고민하고 준비해야, 보다 수월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이들이 순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6학년 담임은 버거웠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학기말이 되었다. 큰 고민 없이 6학년이 아닌, 다른 학년을 지원했다.


2월 말에 학급 발표가 있었는데, 걱정이 되지 않았다. 6학년 지원도 안 했고, 2년 연속 6학년을 맡게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6학년만 아니라면 어떤 학년도 상관없었다.


잠시 후, 1학년부터 담임 발표가 시작됐다. 편안한 마음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다.


'왜 내 이름이 없는 거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 후에, 내 이름이 불렸다.


"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또 6학년 담임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머리가 큰 6학년 아이들과 다시 한 해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피하고 싶었던 6학년 아이들과 새롭게 보낸 한 해는 어땠을까? 그런데 참 이상했다. 6학년인데, 아이들이 차분하고 순했다. 3월에는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느라 조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까지 교직 생활을 하며 만난 아이들 중 나와 가장 잘 맞는 아이들이었다.


또한 6학년에는 마음이 따뜻한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배려심 많은 학년 부장 선생님이 있었다. 학부모님들도 나를 믿어주시고 학급 운영에 적극 협조해 주셨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조합이었다. 만약, 올해 6학년 우리 반을 맡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찔했다.


'내가 계획한 길이, 가장 좋은 길이 아닐 수도 있구나...'


문득 지금까지의 내 삶을 되돌아봤다. 때로는 내 계획과 무관하게 삶이 흘러갔다. 큰 도시의 대규모 학교에서 근무하기를 원했지만, 작은 지방 도시의 전교생이 13명인 소규모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발령 첫해에 본가 근처로 돌아가고 싶어서, 교사 임용 고시를 다시 봤다. 마지막 관문인 3차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큰 병이 발병했다. 시험을 끝까지 치를 수 없었다. 모두 내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각각의 사건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마음만 먹으면 모든 일을 내 뜻대로 이룰 수 있다는, 오만한 마음이 생기진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처럼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감사하게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도, 삶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고, 또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될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불안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새롭게 주어진 길 안에 또 다른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유를 갖고 새로운 길을 즐겨보면 어떨까?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당장 어떤 사람을 만날지,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미리 대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도 없다. 모든 일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다면 삶이 즐거울까? 단조롭고 따분하지 않을까?


우리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소중한 삶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상황도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 6학년 아이들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그 아이들과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새로운 한 해도 계획과는 다르게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뜻밖의 재미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삶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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